어제 일찍 잠들어서 그런지 새벽에 눈이 떠졌다.
혼자 있는 도미토리였기에 너무 어둡고 불을 켜기도 애매하여 가져간 렌턴을 이용하여 화장실을 다녀오고 다시 잠이 든다.
밤새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 내리고 있다.
앞으로의 산행이 걱정도 되지만 그럭저럭 제대로 잠을 잔 듯하여 몸은 나름 개운하였다.
비록 혼자이지만 성대한 아침에 그저 고마울 뿐이다.
잼이나 치즈등 대부분을 집에서 직접 만든 것이라 한다.
다시 짐을 챙겨 길을 떠난다.
오늘은 해발 2292m의 Surenen Pass를 지나 Engelberg로 들어가야 한다.
전체 여정은 20여 km이지만, 약 2시간 못 미쳐 고도를 500m 정도만 올리면 나머지는 내리막길이다.
하지만 예상 못한 비, 더구나 더욱 예상 못했던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길.
혼자 이 길을 준비하느라고 유튜브나 다른 자료등을 봤을 때는 저렇지 않았었는데...
뿌연 조망속에 간간히 전경을 살짝살짝 보여주곤 한다.
길이 험하지는 않다. 걷기에 너무 편안한 길들이 오히려 부러울 뿐이다.
중간중간 계곡이라 해야 하나? 폭포라고 해야 하나?
물로 만들어내는 장관에 잠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다.
고도 2000m 이상이 되니 본격적으로 비가 눈으로 바뀌고 길도 눈길이 되었다.
아이젠이 없는 상태라 걱정을 좀 했으나, 이번엔 Vibram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해야 하나?
다행히 이후 3일간 눈길에서 한번도 미끄러지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새끼 2 마리를 거느린 염소였다.
이 추운 날, 이 높은 곳에서 먹이를 찾는 그들이 애처로워 보이기도 하였다.
어느덧 Surenen Pass에 도착하였다.
어디 앉아서 점심을 먹을까 싶었지만, 하필 가스도 없고 눈을 피해 쉴 만한 곳도 없었다.
그냥 물 한 모금에 초콜릿 바 하나 먹고 그냥 진행하였다.
고도 2000m 정도가 기준인 모양이다.
그 밑으로 내려서자 눈은 다시 비로 바뀌고, 계곡마다 물은 넘쳐난다.
엄청나게 많은 '계곡-폭포-'의 향연이 펼쳐졌는데, 너무 많으면 가치가 떨어질까 저어하여 몇 개만 올려본다.
기독교(가톨릭)의 한 분파인 '베네딕트파'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수도원이라 한다.
Engelberg라는 이름 자체가 '천사의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니,
이런 곳에 이런 수도원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명산에 꼭 유명 사찰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들어가 볼까 생각은 했지만 비에 젖은 몸이 무겁고 그리 간절하지는 않기에 그냥 바깥만 대충 둘러보는 것으로...
마치 멀리서 보면 지리산 '이끼 폭포'를 확대해 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라, 사진 한 장 더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5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다고 하여 휴게소에서 그냥 기다렸다.
뜨거운 커피와 함께 산에서 먹지 못한 점심용 샌드위치를 먹고 나니 정신이 좀 드는 듯 하다.
밤새도록 비는 계속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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