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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쓸데없는 이야기

알렉산더와 크세르크세스 1세

어느 순간 나에게 각인된 크세르크세스 1세의 이미지는
'테르모필레 전투'를 극화한 영화 '300'의 마지막 장면에서 거대한 마차에 팬티(?) 한 장 달랑 걸친 채 나타났던 무시무시한 야만인의 모습이다.
문득 그 야만인들의 세력은 얼마만 하였을까 궁금하여 찾아봤다.
흔히 말하는 페르시아 제국, 더 정확히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지도를 보니 그야말로 대제국이라 할 수 있는 규모이다.
지금으로 치면 불가리아, 튀르키예, 이스라엘(유럽), 이집트, 리비아(아프리카), 시리아, 이라크,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아시아)을 아우르는 
그야말로 대제국(大帝國)이 아닐 수 없다.
'파르스(Persia)'라는 조그마한 땅에서 출발하여 이런 엄청난 제국을 건설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알렉산더 3세는 얼마나 더 큰 제국을 건설하였는가?

외진(?) 마케도니아에서 출발하여 10여 년에 걸친 대원정에 저렇게 넓은 땅을 정복하였다니,
대단하고 탁월한 그의 전쟁 능력에 어떤 의문을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아케메네스 왕조 보다 더 동쪽으로, 즉 인도까지 진출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원전 550년에서 시작하여 기원전 330까지 세계를 제패했던 아케메네스 왕조.
200여 년이 넘는 그 위세는 단지 군사적 힘에만 의존하여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왕조를 지탱하기 위한 법, 정치, 경제, 사회의 다방면에서 튼튼한 기반을 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아케메네스 왕조는 싸움 잘하는 대장 한 명이 한 시절 풍미하며 만든 제국이 결코 아니라,
'키루스왕 - 캄비세스 - 다리우스 - 크세르크세스'로 이어지는 긴 역사적 무게를 가진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그 어떠한 야만인의 이미지를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알렉산더 3세, 그가 건설한 그 제국은 어찌 되었는가? 
그의 사망이 확인되는 순간 바로 갈갈이 찢어져 버리지 않았는가?
도대체 과연 그의 부하들은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던 것인가?
전개 과정은 마치 그가 죽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그런 분위기?
재벌 회장이 죽자 자식들과 사장단들이 재산 가지고 싸우고 갈라서는 그런 막장 같은 느낌이 들기에...
-- 물론 내 수준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깊은 속 사정이 있었겠지...
 
BC 1000년의 시기에서 AD 1300년의 시기 사이에는 무수한 거대 왕조가 생기고 사라져 갔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황당하게도 느껴지지만,
감히 칭기즈칸에게 함부로 대들다 한 방에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진 호라즘 왕조도
그 전성기에는 엄청난 영토를 지배하며 200년 이상을 이어온 왕조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알렉산더 3세가 그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남긴 업적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에 그러한가 궁금해진다.
 
흔히 그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이 언급되면서 거대한 도서관 건립등의 문화적 영향이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이미 그 당시 이집트등에서는 이미 유럽에 비할 수 없는 방대한 도서관을 곳곳에 설립하였었다.
그리고 그가 헬레니즘 문명을 일으켰다?
20세에 원정길에 올라 32세에 죽어 버린 그가?
비록 그 많은 영토를 정복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 10년 만에 헬레니즘 문명을 남겼다?
왠지 약간 무리수를 두는 어거지 거나 과대 포장된 것처럼 여겨지지 않은가?
 
알렉산더의 유일한 의미는 그 이전 시기까지 지중해를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의 진출이 주((主)를 이루었다면,
이때에 처음으로 유럽이 아시아로 진출-침략-하는 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죽어 버리고 제국은 허무하게 갈기갈기 찢겨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자, 
그의 유업을 안타까워한 유럽인들이 '헬레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면서 그 의미를 확대 재생산한 결과일 뿐이다.
이후 그들은 로마 제국 시절 레반트 지역을 일부 지배하기는 하였지만
유럽이 다시 아시아의 중심부로 진출 점령하기 위해서는 알렉산더 이후 거의  200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세계의 중심은 유럽이라 자부하는 그들에게 알렉산더 3세에 대한 로망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정치 문화 사상등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의 그의 영웅화 우상화 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수반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유럽 백인 중심 교육에 찌든 우리들의 뇌리에 그렇게 남게 된 것이고.
 
물론 20살의 나이에 동방 진출을 위해 대장정을 떠났던 그의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5만 정도의 군대로서 100만의 페르시아 군대를 무찌르면 나아갔던 위대한 그의 지략과 지휘 능력.
세계 전쟁사에서 위대한 장수로서 수부타이에 견줄만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능력에 이 정도의 예우를 받는다면, 수부타이는 거의 신(神)의 자리에 올라야 하지 않겠는가?
믈론 1인자와 2인자의 차이로 이야기하면 또 다르겠지만 말이다.
 
역사에 대한 인종적 지리적으로 유럽 백인 중심의 편향된 시각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우리들.
그것은 단지 역사를 보는 유흥(?)의 의미로서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세계정세의 흐름을 보는 시각에도 이런 유럽 백인 중심의 강박 관념에 은연중 따라가게 된다.
150년 전의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외침이
오늘날 한국 정치만이 아니라 일반인의 의식 속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쉽게 부정하지는 못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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