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침이 밝아온다.
이제는 지나온 날보다는 남은 날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제까지 별 탈 없이 진행된 것에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이제 이틀 밖에 남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오늘은 출발 후 바로 오르막 길로 들어가 600m 정도의 고도를 올려 2612m의 'Sefinenfurgge 고개'를 지나야 한다.
날씨와 경치는 여전히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좋다.
아침을 먹고 나와보니, '내가 너무 늦었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소들은 벌써 저 멀리 고개를 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참 부지런하다.
아니 누가 '게으른 소'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는가?
비록 움직임이 느리고 더디게 보이지만, 언제나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물인데 말이다.
밑의 사진은 같은 장면이 두 번 찍힌 게 아니다.
중간에서 약간 밑으로 조그맣게 보이는 마모트이다. 고개를 살짝 틀고 있다. - 아는 사람에게만 보일 수 있을게다.-
어제 Mürren(뮈렌)에서부터 같이 올라온 커플이 조금 앞에서 걸어가고 있다.
이제부터 2616m까지 제법 가파르고 긴 고갯길을 넘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하였던 눈이 없어 너무 다행이었다.- 세상에, 한 여름인 8월 말에 눈(雪) 걱정을 하다니...-
힘겹게 겨우 도착하였다.
셀카를 찍으니 배경이 180도 뒤집어 진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면도를 해서 그런지 나름 단정해 보이네. 이렇게 보면 그렇게 시커멓지는 않은 것 같은데...
고개 정상에서 양편을 번갈아 돌아보면서 한참을 쉬었다.
언제 다시 이 곳을 들르겠는가, 실컷 두 눈에 담아 놔야지...
그리고 이제 내려가자.
참 세상 편한 소들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인간만 낮잠을 즐긴단 말인가? 부지런히 노동한 소들도 이렇게 즐길 권리가 있지 않을까?
언젠가 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유럽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노인과 장애인 그리고 동물들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이미지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들이 편안해 보이기에 나도 더불어 편안함을 누리기 위하여 냇가로 갔다.
씻을려고? 아니지요.
물 받아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으려고 말입니다. ㅎㅎㅎ
따뜻한 햇살, 시원한 바람, 너무도 깨끗한 대기.
그 사이를 뚫고 코와 혀를 자극하는 짜릿한 라면의 냄새와 맛! - 상상에 맡깁니다.-
여기 주위에서 또 하나의 작은 실수를 하였다.
길을 잃어 버렸다.
분명히 Griesalp로 가야 하는데, 길이 양 방향으로 모두 표시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하필이면 이곳에서 GPX가 서비스 제한으로 다운되어 버린 것이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내가 내린 결론은 일단 올라가자!
결론적으로 길을 가로지르는 꼴이 되면서 약 3~4km를 잘라 먹어 버렸다.
즉 Griesalp를 들르지 못하고 바로 숙소가 있는 Bundalp로 가게 되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숙소 앞의 전경이다.
아마 내일 올라가야 할 고개라고 여겨진다.
그래도 경치 하나는 한마디로 죽여준다.
정말 단촐한, 나 같은 여행객에게 딱 알맞은 1인실 방이 아닌가 싶다.
숙소 주변 경치를 둘러보고 저녁을 먹고 책을 보다 잠이 들었다.
4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밤하늘의 별들을 보려 하였으나,
이 시기에 무슨 '슈퍼문'인가 하여 달이 너무 밝아 밤에도 별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날은 밤 11시경에 나갔더니 달이 뜨기 전인지 어두운 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듯하였다.
그래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 지는구나.
아, 내일이 이 트레킹의 마지막 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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