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사진으로만 봐도 저 전경들이 현실처럼 여겨지지 않는데, 현장에서는 어떠했을까?
그저 저 아름다움에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 단 출발하기 전까지만...
다시 아침이 밝아온다.
오늘은 계획된 트레킹의 마지막 날이다.
현재가 1600m 정도인데, 오늘은 via alpina green trail에서 가장 높은 고개인 2778m의 Hohtürli Pass를 지나야 한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그 위 2810m에 위치한 Blüemlisalphütte에 올라 만년설 빙하까지 둘러본다고 한다.
그리고 Kandersteg까지 하산하면 'lonely via alpina trekking'의 나름의 '대미(大尾)'를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자~~~
이렇게 날도 죽여주는 데, 출발하자!!
어느 정도 올라와 돌아보니 전날 묵었던 숙소가 조그맣게 보인다.
멀리서 보니 주변 경치가 더욱 뛰어나 보인다.
이제 마지막 급경사로 올라가는 고빗길이다.
알프스에서 이 정도의 시설물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할 수 있으며, 상당히 힘들고 위험한 구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자연스레 지체된다.
나이 든 부부도 서로 챙기며 올라간다.
나는 여전히 심박수를 조절해야 하기에, 그들과 같이 움직일 생각을 한다.
마침내 고개에 다다랐다.
인증 사진만 찍고 바로 산장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여전히 짧은 영어로 반복한다. 'Beer, half liter'
- 점심이 아쉬워 메뉴판을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기에 그냥 단백질 바 하나로 대충 때운다.-
솔직히 스위스는 숙박 시설이나 휴게실 화장실, 특히 간단한 저녁 한 끼에 기본 4-5만 원 하는 엄청난 고물가 등등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 불편하고 찌증나게 하거나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고개를 들면 만년설에 뒤덮힌 눈부신 장관,
아래를 쳐다보면 군데군데 호수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정경,
저 멀리 끝을 모른 채 이어지는 마루금들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광경,
어찌 그 모든 것이 용서되고 이해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충분히 쉰 다음이기에 천천히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솔직히 이때는 '앞으로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겠느냐, 이제 끝났구나.'라는 심정이었다.
험준한 암벽에 붙어 는 염소 - 알파인 아이벡스 같기도 하였는데, 너무 멀어서 애매하다.- 엉덩이만 찍혔다.
주변 경치를 구경하며 천천히 내려오는데
갑자기, 우와~~~
엄청나게 아름다운 호수가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Oeschinensee(외시넨 호수)이다.
그 아름다운 장관에 그냥 지나갈 수 없어 맥주 한잔 마시면서 감상하며 쉬어간다.
-- 맥주가 그리 시원하지는 않아 약간 아쉬웠지만...
거대한 산사태로 인하여 생긴 호수라고 하는데, '되는 집안에는 뭘 해도 잘 되는구나'라는 생각만 들뿐이다.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중의 하나라는 것은, 즉 그만큼 휴게소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바쁠 일도 없기에 다시 커피 한잔을 하며 주저앉는다.
보면 볼수록 감탄만 나올 뿐이다.
-- 아니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자연 호수가 가능하다니...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날씨 속에 자유로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옆에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똥을 싸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이상하지만, 익숙한 그들에게는 별 문제가 아닌 모양인가 보다.
마지막으로 호수를 구경하고 이제 다시 본격적인 하산길에 오른다.
군데군데 이름 없는 그저 그런 'Bach'나 폭포들이 길을 따라 즐비하게 펼쳐진다.
아~~ 이제 진짜 끝났구나.
혼자 여행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 바로 지금 같은 때가 아닌가 싶다.
뭔가 축하를 하고 싶은데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 것.
4년전 Zermatt에서 마지막이라며 소 돼지 고기를 구워, 처음보는 외국인도 불러 같이 술을 마시던 기억이 새롭다.
하기는 이제는 수술 후라 술도 제대로 마음껏 못 마시니...-약간 초라해진다, ㅎㅎㅎ-
숙소에 짐을 풀고 Coop에 들러 다시 라면 두 개, 맥주 하나, 살라미 하나를 구입하여 주변 공원 벤치로 나갔다.
주변 경치나 전망은 여전히 스위스 알프스이니 걱정할 게 없다.
언어도 안되고 어디가 어디인지 길도 제대로 모르면서 GPX 하나에만 의존하여
무모하게 혼자서 기획한 10일간의 알프스 트레킹을 이렇게 계획에 맞춰 무사히 안전하게 끝낸 스스로에게
충분한 격려와 뿌듯함 약간의 자랑스러움을 부여하며 초라한 자축 파티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일은 취리히로 들어가 딸을 만나야 한다.
이제 제대로 쉬고 먹으면서 딸과의 취리히 데이트를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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