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눈을 뜨고 출발을 준비한다.
여기는 아침을 준다는 이야기가 없기에, 물어보기도 어렵고, 그냥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출발한다.
하지만, 좁은 공간이라 그런지 혹시라도 라면 냄새가 남을까 싶어 일단 문을 다 열어 놓고 나왔다.
오늘은 800m 정도의 고도에서 2000m까지 끌어 올려야 한다.
남은 두 구간이 고도가 2600, 2800m에 이르기에, 안전과 여유를 고려하여 3일에 걸쳐서 움직일 예정이다.
며칠 전까지 'via alpina' 홈페이지에는 '폭설로 인하여 우회로 사용'에 대한 권고가 떴었으나,
지금은 그에 대하여 별 다른 언급이 없다.
아마 눈비가 그치고 며칠간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눈이 녹았나 보다.
당연히 저 멀리 보이는 만년설은 녹으면 안되고.
알프스에서는 너무도 흔한 그저 그런 'Bach'이다.
대피소는 아니고 작업실 비슷하게 다양한 공구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주변 경치도 괜찮고, 계속 오르막길을 걸었기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햇살은 좋지만 등산 양말이 두껍기는 한 모양이다.
좀체 마르지 않는다.
이제 또 어느 정도 올라온 모양이다.
반대편에 1200m 정도의 고지에 위치한 Wengen 마을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문득 열차 철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오늘의 1차 목적지인 Mürren(뮈렌)에 거의 도착하였나 보다.
여기는 영화 007 시리즈의 한 작품에서 배경이 되었다는데, 무슨 영화인지는 모르겠고 별로 관심도 없다.
그냥 1600m의 고지에 위치한 작고 조용한,
그리고 무엇보다 Eiger(아이거) Mönch(묀히) Jungfrau(융프라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마을로
최근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라 한다.
걷기에 너무 좋은 길이다.
Eiger(아이거) Mönch(묀히) Jungfrau(융프라우) 3개의 산이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반복되는 짧은 단어로 이야기 한다. - 'Beer, small'
약간 배도 고픈 것 같아 메뉴판을 뒤적이니 음식은 12시가 되어야만 가능하단다.
뭐, 어때서...
이런 전경이 있는데 뭐가 더 부족한단 말인가? 조금 없으면 어때서...
천천히 맥주를 마시고 마을을 둘러본다.
군데군데 한국인의 대화가 들린다.
내 예상대로 트레킹 길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본 것은 여기가 끝이었다.
하지만 인구 450명에 숙박 시설만 2000명 분이 있는 이곳을 둘러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다시금 산길로 접어 들었다.
제법 가파른 고개를 한참을 치고 올라가니 새로운 전망이 열리기 시작한다.
심박수를 가능한 150회/min 밑으로 유지하며 진행하려니 걸음이 느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신 이 아름다운 경치를 더욱 천천히 깊게 감상할 수 있으니, 오히려 고마워하여야 하나?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더 무슨 표현이 있으려나???
한참을 힘겹게 치고 올라서 인지 이제 길은 거의 완전히 평지이다.
즉 너무도 편안한 걸음으로 한 시간 넘게 이런 길을 거닐었다는 뜻이다.
오! 자연이여,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저 멀리 오늘의 숙소가 보인다.
그 앞의 너른 들판에는 엄청난 규모의 소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마치 소설 속의 장면들처럼, 그림들처럼...
내가 잠시 정신줄을 놓았었는지, 숙소의 사진을 찍은 게 없다.
대신 다른 곳에서 잠시 빌려서...
완전 도미토리 구조이다.
처음 내가 도착하였을 때는 4명 정도였는데, 저녁이 되자 20여 명으로 거의 만원이 되었다.
하지만 서로가 극히 조심하여서 그런지 나름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자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 코를 고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너무너무 다행이었다.
의자 위치가 환상적일 수밖에 없다.
간혹 저곳에 앉아 맥주나 커피 한잔으로 저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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