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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다녀온 이야기

'Via Alpina - 6' - Grosse Scheidegg에서 Berghaus Alpiglen까지

이제 어느덧 'lonely Via Alpina trekking'도 예정의 절반을 넘기고 있다.
다행히 별 사건 사고 없이 일정에 맞춰 움직여 왔기에 그런지 그리 힘들지는 않다.
어쩌면 건강 문제로 너무 조심스럽게 일정을 짜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약간 건방진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고, 약간의 여유로움이 더욱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막상 시간에 쫓기거나 거리에 밀리기 시작하면 예약된 숙소 문제등 전체 일정이 흔들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번은 4년 전 Biwak으로 진행한 Haute Route의 상황과는 다르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하지 않겠나.
 
아침에 일어나 대충 준비를 마치고 식사를 기다리는 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어보니 목동들이 소떼를 끌고 나가는 길이다.
하지만 더 대단한 것은 그 뒤를 따라오는 차량들이다.
아무도 클랙션을 울리거나 앞지르기를 시도하지 않는다.
소가 도로를 완전히 벗어나는 그 순간까지 조용히 따라갈 뿐이다.
이를 악물고 악다구니질을 해대는 대한민국에서 자란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이다.

 

 

하지만 하늘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이해된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경관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겠는가?
오늘은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한 Gridelwald를 지나가는 날이다.
아무 곳이나 눈을 돌리기만 하면 감탄만 터져 나오는 데,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한국에서 처럼 그런 천박하기 그지없는 악다구니가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대피소나 휴게소로 만들어 놓은 정자 비슷한 곳이다.
여기는 화로에 장작까지 준비되어 있어 필요한 사람은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툭하면 무조건 금지나 폐쇄 벌금 위주의 국립공원 관리 수준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마 그 유명한 피르스트(First)로 추정되는 곳이다.

야~~~
정말 너무 비현실적이라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여기서 하나 실수를 하였다.
출국 당시 라면과 햇반 그리고 김치를 두 개씩 챙겨 갔는데, 부탄 가스를 못 구해 먹지를 못하였다.
'Grindelwald에 가면 꼭 가스를 구해야지...'
마을에 내려와서 등산용품점에 들어가니 여기는 없고 10분쯤 더 가면 파는 곳이 있다고 한다.
어째 우째 물어서 부탄가스를 구입하고 나니, 빨리 저 산에 올라가 라면 삶아 먹을 생각뿐이었다.
즉 Gridelwald 시내를 지나오기는 하였지만,
시간도 남는데 좀 더 느긋하게 구경하거나 즐기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이 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 물을 받아 라면과 햇반을 끓이니,
좀 더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이 전경을 바라보며 밥을 말은 라면에 김치라...
맛은 상상에 맡기겠다.

근 일주일 만에 라면에 밥 말아 김치랑 먹고 나니 순간 아무 생각이 없다.
한참을 더 쉰 다음에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순간 Gridelwald를 너무 그냥 지나쳤다는 것을 자각하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배가 불러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1600m 정도에 위치한 오늘의 숙소이다. 'Berghaus Alpiglen'
이곳은 한국에서 유독 유명한 바로 그 'North Face'-아이거 북면-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이다.
바로 맨 밑의 사진이 바로 아이거 북벽 - North Face이다.
그리고 아쉬운 Grindelwald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

이 숙소에서 제법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다.
인천 송도의 과학 고등학교 학생들이 취리히로 수학여행을 왔다던데, 무슨 소리인지... ㅎㅎㅎ
혜초 여행사가 안내하는 '3대 미봉 트레킹' 팀도 만났다.
그 팀장은 나에게 어떻게 이 길을 알고 혼자 걸을 생각을 했냐며 놀라워하기도 하였다.
그냥 '묵언 수행'중이라 대답하며, 다음에 만날 일이 있기를 기대하고 헤어졌다.
 
숙소의 창으로 보이는 이 절벽이 바로 그 'North Face'이다.
Kleine Scheidegg에서 이곳까지 내려오는 '아이거 트레일'이 희미하게 보이는 바로 그 길이다.
몇몇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다.
나는 내일 바로 옆의 다른 길로 Kleine Scheidegg로 올라가야 하고... 

저녁을 먹고 잠시 산책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낮과는 또 약간 다른 차가운 느낌의 아이거 북벽의 위용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