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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쓸데없는 이야기

영화 한 편 보기가 이렇게 힘들지는...

예전부터 언젠가는 다시 봐야지 했던 영화가 있다.
20년 전에 참 좋게 봤던 영화로 기억에 남아 있다가, 언제부터인가 넷플릭스에서 자주 보였었다.
오늘 마침 기분도 꿀꿀하고 책을 보기도 싫어 영화를 틀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와 유대인 그리고 예술을 다룬 영화 '피아니스트'
하지만 4-50분을 겨우 보고 결국  중간에 끊어 버렸다.
'하필이면 지금 이 시기에 그 영화를 눌렀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영화의 전반부 내용에서 별 색다른 것은 없었다.
1939년 이후 나치 점령하의 폴란드 유대인들의 비극을 소재로 한 것이기에,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그리고 비극적인 장면들이 지나간다. 
차이라면 20년 전 보다 조금은 더 익숙해진 '게토(ghetto)'에서의 실상이 구체적으로 와닿았다는 점 정도일 게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의 현실과 겹쳐지면서 영화에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어 더 이상 보기가 어려웠다.
 
1948년 어설픈 점령자로 편파적인 중재로 분쟁의 불씨만 남겨두고 떠나버린 영국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황당한 국경선을 가지게 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며칠 전 다시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하여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의 지상전 공격을 예고한 상태이다.
하지만 지상전 공격은 나치 등이 그냥 '게토(ghetto)'에 유대인들을 집어넣고 유린한 정도가 아니다.
한 도시를 봉쇄하여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무차별 폭격과 총질을 하겠다는 뜻이다.
포탄과 총알은 일반 시민과 하마스 대원을 결코 구별하지 않는 법이다.
특히 지금 분노에 찬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해서 어떠한 만행을 저지를지는 눈앞에 훤하게 그려지지 않는가?
 
물론 세계사에서 단일 민족으로서 가장 가혹한 탄압을 지속적으로 받은 민족을 뽑으라면
누구든지 서슴지 않고 '유대민족'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기원전 600년경의 '바빌론 유수'에서부터 시작된 유대인의 비극은 
특히 인류 최대의 역사적 비극 중 하나인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섣부른 판단으로 인하여
너무도 억울하게 로마인의 죄를 뒤집어 쓴 유대인으로 하여금
'예수 살인자'라는 결코 지울 수 없는 대(代)를 이은 주홍글씨가 새겨지게 되고,
이후 근 2000년의 세월을 정말 일일이 언급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비참하고 힘들게 살아왔다 할 수 있을게다.
그리고 그 비극적 논리는 오늘날의 종말론에서도 이어져 오고 있으니...
 
오늘날 이스라엘의 최대 우방은 누구나 미국을 뽑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미국의 안보는 이스라엘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식의 논리가 일반화된 듯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듯 개신교의 가장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세력인 복음주의나 세대주의(世代主義,  Dispensationalism)가 주류를 형성한 미국에서
종말론과 유대인 그리고 이스라엘의 안보 문제는 애매한 이율배반적인 의미를 가지는 듯도 하다.
 
예수님이 재림(再臨, Second Coming) 하는 그날, 
유대인의 1/3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나머지 2/3는 지옥불로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복음주의와 세대주의자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한 성묘교회가 있는 '템플 마운트(Temple Mount)'를 결코 무슬림의 손에 넘겨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복수로 유대인들을 멸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려보낸 것이니,
이는 곧 무슬림식 최후의 심판이 임박한 것이라 단언하는 무슬림의 반유대주의적 종말론이 쉽게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참,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유대인은 멸해져야만 할 민족으로 인식된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기도 하며,
그래도 둘 중 하나에게 의지하여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을 둘러싼 주변국의 정황이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불과 수십년전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겪어야만 하였던 그들이,
지금 약간 힘이 세고, 미국을 위시한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고 하여
세종시 만한 면적에 200만 이상의 인구가 밀집한 '가자 지구'를 봉쇄하고 지상전을 전개할 명분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영화 한 편을 보려던 했었는데
그게 이렇게 정신적으로 힘들게 느껴질 줄이야...
그래도 마저 보기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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