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디 다녀온 이야기

강화 나들길 - 1

강화도 - 이번이 경주로 내려가면 언제 다시 찾아올 수 있으려나...

김포에 살던 군대 시절 마니산과 전등사 그리고 마라톤을 위해 간혹 들렀던 곳이다.

공주에서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며칠 쉬는 시간에 한번 다녀와야 겟다고 생각을 하였었다..

아침에 일어나 주섬주섬 챙겨 집을 나섰다.

역시 '버스-지하철-KTX-지하철-지하철-버스'의 여정을 거쳐 강화 여객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어느듯 점심이 가까운 시간이라 식당에서 가볍게 비빔밥과 김밥을 먹었다.

-- 음식 조합이 이상한 것은, '칼국수와 김밥'을 시켰는데 아주머니가 잘 못 듣고 비빔밥을 가져왔다. ㅎㅎㅎ...

'강화 나들길 1코스'의 출발점이 터미널이기에 천천히 시작한다.

'강화도'는 평소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곳인지 몰라도,

한반도의 역사에서 중세와 근대사에서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지워질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고려 12~13세기에 걸쳤던 '강도정부(江都政府)' - 즉 강화도 천도에 의한 '대몽항쟁(對蒙抗爭)(?)'.

그리고 1866년 미국 '샤먼호'와 프랑스의 침략(병인 양요)와 1871년의 미국에 의한 신미양요.

이어 1875년 '운양호 사건'을 핑계로 침략(?)한 일본에 의한 1876년 2월 굴욕적 '강화도 조약'.

-- 그런데 이땅의 여당 대표는 결코 침략이 아니라 한다, 그리고는 전국민에게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라'고 훈계를 한다. 그리고 국민은 조용히 그 말을 따르고 있고, 그 작자는 여전히 이 땅의 여당 대표를 이어가고 있다.

더구나 지금도 총 인구는 7만 정도인데,

3.1 운동기에 '3.18 강화 시위'에는 2만명이 참가하여 전국 최대 시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3.1 당일 서울의 시위에 1만명 정도가 참가하였다고 하니, 당시 강화의 분위기와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강화 산성의 '동문'이다.

이후 곳곳에서 여러 성문들이 보이지만, 나중에는 헷갈리기만 하다.

강화도는 그리 큰 전쟁을 겪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토지가 비옥해서 그런지

길거리 마다 마을 마다 엄청 큰 나무들이 제법 많다.

더구나 인구 65,000 정도의 이땅에 성당과 교회 그리고 원불교, 절이 엄청 많다.

특히 곳곳에 성지로 표시되어 있어 약간 당황 스럽기도 하다.

여기는 대체로 '성공회'에 관계된 시설이 주를 이룬다.

그것은 한국에서 최초의 성공회 신도로 세례를 받은 곳이 강화였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교황을 인정하지 않고 영국왕이 교주인 성공회는 기독교(천주교)인가? 개신교인가?

그러면 그 곳은 교회(church)인가? 성당(Catholic Church)인가?

 

전체적 분위기는 전통 한옥의 양식에, 입구에는 종까지 있으니 약간 사찰 분위기도 있는 것 같다.

하기사, 부처의 얼굴이 동남아, 중국, 한국, 일본에서 약간씩 다르듯이

예수의 피부색등도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 건축물이 똑같을 수가 있겠는가.

강화도에서 빼 먹을 수 없는 인물 중 한 명을 뽑는다면, TV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철종'이 아니겠는가.

얼마전에도 그에 관한 드라마가 나왔었던 것 같은데,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을 이후 재건축한 곳이라 한다.

안은 개보수 중이라 번잡하여 사진만 몇 장 남기고 급히 나왔다.

골목을 나오다 우연히 발견한 식당 메뉴이다.

'젓국갈비?'-처음 들어 보는 음식이다.

교통과 택배가 발달한 요즘에 지방 특색을 드러내는 별식이 드물어 졌다.

'저녁은 여기서...'

'어디 다녀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화 나들길 - 3  (2) 2022.11.11
강화 나들길 - 2  (0) 2022.11.11
외씨 버선길 - 4  (0) 2022.11.04
외씨 버선길 - 3  (0) 2022.11.04
외씨 버선길 - 2  (0) 2022.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