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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쓸데없는 이야기

도대체 소크라테스는 누구인가?

아직까지 소크라테스의 책을 읽어 본 적은 없다.
아니 이러면 틀린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단 한 권의 책도 저술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남긴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어떻게? 바로 뛰어난 제자 플라톤의 탁월한 신(神)급 기억력에 의해서.

아마 플라톤은 역사상 최고의 기억력을 가진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존경하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문답의 흐름과 내용을 하나하나 모두 기억하여 기록으로 남겼으니 말이다.
불과 30분 전에 내가 직접 참여한 대화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나 같은 이와는 비할 수가 없을게다.

특히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철학으로 많이 인용하는 내용 중, 감옥에서의 대화를 옮겼다고 주장하는 '크리톤'과 '파이돈'
문제는 정작 대화를 정리하였다는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감옥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팠다는 이유인데, 문제는 그 경황없는 와중의 복잡한 대화를 어떻게 그대로 기록할 수 있었단 말인가.
더구나 소크라테스가 죽은 지 10-15년이 지나고 서야 그때의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저술하였다고 하는데,
과연 여기서 우리는 그 어떤 진짜 소크라테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고도 우리는 '크리톤'과 '파이돈'의 글을 인용하면서 소크라테스의 국가관, 법에 대한 개념, 정의론 등등을 논하고 있다.
여럿 상반되는 내용을 가지고, 마치 절묘한 균형을 이룬 위대한 철학자인 것처럼 말이다.
나 같은 어리석은 이는 과연 어디까지를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라 믿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야 하는지...

플라톤은 너무 비겁해 보인다.
그냥 스승에게 배우고 익힌 내용을 더욱 심화시켜 자신의 것으로 말하면 되는 것을,
굳이 스승의 이름 뒤에 숨으려는 것은 아닌 것인지?
아니, 플라톤이 비겁한 것이 아니라, 굳이 책 글자 그대로 소크라테스의 말이라 믿고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후대 학자들의 집착이 더 비겁하고 안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유토피아'의 이야기를 전해준  라파엘 히드로다에우스를 실존 인물로 우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나쁜 상상을 해본다.
그가 스승의 마지막 밤을 위해 다른 친구들과 같이 방문하지 않은 것이 과연 아팠기 때문일까?
한참 커나가려는 젊은 유망주가 스승의 오명을 뒤집어쓰기 불편하여 피한 것은 아닐까?
이런, 내가 너무 세상에 찌들었나 보다...

이번에는 소크라테스의 탈을 쓴 플라톤의 이야기를
플라톤의 목소리로 읽어 읽어볼까 싶은데도, 왠지 저어 되는 마음이 앞선다.

특히 루이 다비드의 그림 '소크라테스의 죽음'도 나는 마음에 안 든다.
나이 70의 약간 뚱뚱한 노인으로 알려진 그가, 어떻게 복근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런 몸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소크라테스는 후대에 의해 인위적으로 너무 조작되고 과장된 인물이 아닌가 여겨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