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나름 조금 바쁜 주말이 되었다.
금요일 저녁 김해 엄마한테 가서 귀국한 형과 대방어 한 접시에 소주 한잔(진짜는 세 잔 이지만)하고
토요일은 '길병원 동기'들이 내려 오기로 되어 있어 다시 경주로 올라왔다.
원래는 형과 김해 신어산이나 무척산등을 가볍게 다녀올 생각이었으나,
형이 엄마 요양 보호사 신청 문제로 다른 약속이 있어 아침에 그냥 올라왔다.
친구들은 서울과 인천등지에서 저녁에 오기로 하여 오전은 어디를 갈까 잠깐 생각하다,
언제가 한번 둘러 보았던 '마석산-남산'을 다시 가보기로 하였다.
-- 그러나...
몇년전 천하 고수인 무제 형님을 따라 갔을 때는 길이 넓게 잘 닦여 있었던 것 같았기에 별 생각없이 갔는데,
완전 길이 어긋나 버려,
마석산은 구경도 못하고 남산도 둘레만 걷는 꼴이 되고 말았다.
길은 분명 넓었는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없었다.
그래도 입구에 있는 용문사의 웅장한 입구와 불상은 여전히 그 멋을 뽐내고 있으니
그 중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것이다.
어디서 부터 길이 뒤틀려 버린거지?
다시 곰곰히 생각해봐도 정상적인 길을 찬찬히 걸은 것 같은데...
약간 기이하게 자라는 나무가 있어서...
이것을 나무 줄기 기둥이라 하여야 하나, 가지라고 하여야 하나?
다시 길을 찾아 산으로 올라가려니 조금 귀찮아 지고, 그냥 둘레길 삼아 걸어보자는 심산으로...
제법 큰 소 목장이 있다. 과연 이 소들은 '얼룩소'일까? '젖소'일까?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라는 동요와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라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떠 오른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동요에서 말하는 얼룩소는 엄밀히 말하면 '칡소'를 의미하는 것이라 하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소는 '(얼룩빼기)황소-누렁소'이기에,
얘들은 우유와 고기를 공급하는 '젖소'가 아닐까 싶다.
노인들을 위한 '실버 요양원'이다.
외관으로 만은 흔한 일반적인 시내의 요양원이나 요양병원과는 격이 달라 보인다.
이런 한적한 공기 좋은 곳에 개인 독채 같은 구조인데, 나중에 한번 검색을 해봐야 하겠다.
점 점 나이들어 가는 엄마도 걱정이고, 어차피 내가 늙어도 가야 하는 destination 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느긋한 마음으로 맨 정신일 때 잘 챙겨놔 둬야겠지.
터덜터덜 별 생각없이 길 따라 갇다보니, 이제 조금씩 해가 질려고 한다.
시간이 제법 흘렀나 보다.
오후 늦게부터 제법 찬 바람이 부는 것 같더니, 메세지에는 '한파 특보'가 뜬다.
-- 아니 무슨 소리인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세찬 바람에 공기는 더욱 깨끗해지고, 넓은 평야는 더 없이 편안해 보인다.
이런 곳이 있어 들러본다.
지난번 나주에서는 '전라남도 산림자원 연구원' 비슷한 곳에 들러서 참 좋은 기억을 갖고 있었는데.
의외로 이렇게 좋은 시설이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구나 싶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아서 그렇지만, 10월의 조용한 저녁길이었다면...
내년에는 꼭...
지인들과 어디를 갈야하나? 고민을 하였는데, 도착 시간이 늦어서 다른 데는 가지 못할 것 같기에
야경으로 유명한 '동궁과 월지'를 둘러보고 밥을 먹으로 가기로 하였다.
신경주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탄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조금 일찍 도착한 관계로 더욱 차가워진 바람을 맞으며 기다렸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 둘이 확! 눈에 들어온다. ㅎㅎㅎ
희환이는 1년 반만에 만나는 데도, 마치 며칠전 술 마시고 헤어졌다가 보는 것 같으니...
하기사 몇년 전 귀국하여 공주를 찾아왔을 때도 그러하였으니,
그래서 이렇게 26년의 세월을 이어가면서, 그 간극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 곳의 야경은 나도 처음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울산에 있으면서 밥을 먹고는 해 지기 전에 돌아갔었나 보다.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약간은 번잡스러웠지만, 그래도 너무나 멋진 장관이었다.
10-20분 정도 대충 구경하고 밥 먹으러 가자고 한다. 아침부터 굶었다나?
예약한 '대방어집'에 가니, 예약보다 일찍 왔기에 자리가 없어 대기하라고 한다.
처음 오는 집이라 약간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은근히 '맛집인가?'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기다렸다가 들어가니 손님들로 만석이고 9시가 넘어 나가는 시간까지도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맛은? 장담은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다녀본 대방어집 중에서는 첫 손가락에 뽑아주고 싶다.
대방어가 좋아서 인지, 아니면 같이 한 사람들이 좋아서 인지는 정확히 구분하기 힘들지만.
바로 숙소로 들어가기는 애매하여 작은 술집에서 한잔 더하고, 다시 술과 안주를 챙겨서 숙소로 들어간다.
그러고 보니, 수술 이후로 이렇게 길게 술자리를 한 적은 처음이었다.
--물론 내가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술을 마시지도 못하면서 술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적응하게 되는 건가?
세상 이야기, 각자의 인생 이야기, 과거 수련의 전공의 시절 이야기 등등.
이어지는 이야기에 12시가 되어 주인이 수면을 권하는 소리에 겨우 잠자리에 든다.
-- 역시 하이라이트는 '기스모' 이야기지만, 그 주인공은 우리들만의 절대 비밀이다. ㅎㅎㅎ
원래는 아침에 남산을 가볍게 올라갈 생각이었으나, 기차표를 13시에 예약해 놨다기에 포기하고,
날씨가 너무 좋아 숙소에서 나와 그냥 걸으면서 대릉원, 계림등을 둘러보고 황리단길로 향했다.
이제는 늦가을도 지나고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듯하다.
경주 향교에 들러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일찍 점심을 먹으려고 황리단길로 들어갔다.
정취나 분위기를 고려해서 '도솔 마을'을 생각하였으나, 에고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공사중'이네?
이리저리 구경하다 근처 우동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노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니,
이제 각자 돌아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20대 말미, 낯선 인천 땅 처음 만난 날, 그 날 마지막 꽃게탕 집까지 함께 하였던 인연,
사회에 나오면서 부터는 각자의 삶 속에서 그리 자주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언제 만나도 며칠 전 술 한잔 하고 헤어진 듯한 그 익숙함에 익숙해져 버린 인연속에
이제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50대 중반이 된 지금,
하나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다들 지금처럼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늙어 갔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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