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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다녀온 이야기

'자도봉어' 한바퀴

경주에 산이라 하면 대부분 제일 먼저 '남산'을 떠올린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경주에는 '남산'이라는 山이 없다.

'고위봉'과 '금오산'은 있지만, '남산'은 없다.

그럼 '반야봉' '천왕봉'은 있지만 지리산은 없다? 설악산도 없네? 속리산도 없네? 그러면 한라산은?

그러기에 역으로 이야기하자면 굳이 힘들게 억지로 정상을 찍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그 일대를 거닐면 다녀온 것과 매일반인 것이다. 

경주 남산 일대를, 지리산 일대를, 설악산 일대를, 한라산 일대를 그렇게 거니는 것.

그러면 남산을 지리산을 설악산을 한라산을 다녀온 것이라 여겨도 무방할 게다.

그래도 굳이 1000m 이상을 올라가 정상을 찍고 싶으면, 뭐 그것도 좋은 생각임에는 틀림이 없고... 

 

안강은 경주에서도 약간은 외진 곳이라 할 수 있다.

그곳에 조선시대 영남학파의 정신적 지주로 추대된 이언적을 모시는 '옥산 서원'이 있다.

그런데 이언적이 어떤 인물인지, 왜 정신적 지주인지, 영남학파가 기호학파나 호남학파와는 어떻게 다른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 주위를 몇 차례 들렀지만, 서원 내부를 구경한 기억은 없다.

이번에도 역시 그러하였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는 일요일 아침.

병원 식당에서 아침을 제법 든든히 챙겨 먹고 편의점에서 '칙촉'과 '오레오'를 사들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거의 40분을 가는 동안 손님은 단 3명, 마지막 약 15분은 혼자서 타고 간다.

원래는 버스에서 내려 몇 분 걸어야 하나, 기사분이 바로 입구에 하차를 시켜준다. "고맙습니다."

안강에 있는 '자옥산-도덕산-봉좌산-어래산'을 연결해서 걸어 볼 생각이다.

거리는 약 18km 정도로, 예전 같으면 별 무리 없을 거리이나 이제는 가능한 천~천히 진행해야 할 거리이다.

안개비라기보다는 는개 비 정도로 내리면서 전망은 전혀 없다.

원래 이 길이 전망은 별로 없고 경사만 제법 되기에 그리 인기 있는 길은 아니지만, 

이렇게 짙은 안개가 깔린 날은 더욱 힘들고 길게만 느껴진다.

1시간이 채 못되어 '자옥산'에 도착하였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제법 많이 느려진 것 같다.

뭐 그러면 어떤가, 천천히 다니니 오히려 몸은 덜 힘들게 느껴지고 쉬지를 않으니 전체 시간은 비슷한 것 같으니.

그래도 이런 날 뜨끈한 어묵탕에 소맥 한잔이 그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솔직히... 

쉬지 않고 바로 진행한다.

사진은 별 것 없다. 그냥 심심해서 찍은 것일 뿐이니 말이다.

도덕산에 오르니, 예전 우연히 여기를 지나는 낙동 구간을 같이 했던 기억이 난다.

'다물'을 따라갔었던 그날, 참 재미있었는데... 

다들 잘 지내고 있는지...

나뭇가지에 물방울이 맺히면서 자세히 보니 꽃망울도 익어가는 듯하다.

조만간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면 조그만 망울에서 예쁜 꽃이 피어날 게다.

예전 여기서 끓이고 굽고 마시고 하였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한 번은 그날도 비가 왔었구나.

그래서 그날은 봉좌산에서 그냥 하산하여 하산주나 찐~하게 했었지. ㅎㅎㅎ

이제는 홀로 외로이 뜨거운 커피에 오레오 비스킷이나 씹으며 잠시 쉬어 간다.

얼마 전 공주에서 같이 근무하였던 간호사들이 경주에 놀러 오면서 선물로 주고 간 보온 텀블러이다.

비 내리는 겨울날, 도덕산을 지나면서부터 는개 비는 이제 제법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우산을 받쳐야 할 정도이고,

급격히 내려가는 체온에 이 텀블러에 담아 온 커피가 얼마나 소중하였던지.

당장 카톡으로 다시금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봉좌산에 이르니 그리 고도가 많이 올라간 것도 아닌데,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아니 비와 눈이 섞였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 '눈비 내리는 겨울 산'

원래 여기가 새해 일출 등 조망이 좋은 곳으로 나름 유명한데, 오늘은 영~~~~ 

산 모퉁이를 돌아서니 처음으로 조망이 보인다.

몇 년 만에 오는 곳이기에 기억은 전혀 없다.

그냥, 아~ 이런 곳이었구나...

'부처손'이 무슨 보약이라 하던데...

날은 추워지고,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혼자서 6시간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지겨워진다.

그래도 가능한 맥박수 130~140을 넘기지는 않으려 조심하면서 진행을 한다. 마지막 남은 어래산을 향해.

그런데 모든 산들이 다 그랬지만, 요 마지막이 참 모진 놈이었다.

100m 약간 넘는 높이를 치고 올라가는 것인데, 그게 100m가 아니라 최소 500은 되는 듯하였으니 말이다.

하산하는 길에 연락이 왔다.

1박 2일 해파랑길을 갔던 사람들이 '옥산 서원'에 도착하여 기다린다고.

배도 고픈데 빨리 내려가야지.

가서 새로 맛을 들인 '간받이'라는 돼지 토시살을 먹어야겠다.

 

비는 계속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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