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름 좀 진지하게 생각한 이야기

너무 요원(遙遠)한 꿈이려나?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자그마한 계기들 중의 하나가
깊은 울림을 주었던 정신적 스승이기도 하였던 분들이 어느날 타계하였다는 뉴스를 접할 때이다.
그리고는 한번씩 그 분들의 책이 기억나고, 또 뒤적거리게 된다.
물론 개인적 관심사가 주로 역사학에 있다 보니,
그 내용이라는 것이 어차피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천년전의 일이기에 지금은 별다른 의미는 없을 지 모르지만...
 
최근 '미국 민중사'로 널리 알려진 '하워드 진'의 책에 눈이 가서 한권 구입하였다.
어느듯 그 분도 떠나신 지 어느듯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구나.
18세 흑인 여성은 20센트를 내고 버스를 타고서 앞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녀는 '외설행위'로 체포되어야만 했다.
미국 올버니시 역사상 최초의 흑인 변호사였던 C.B. 킹은 구치소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보안관 집무실을 찾아갔다.
백인 민권 운동가가 다른 수감자에게 턱뼈와 갈비뼈가 부숴지고 의식을 잃을 정도의 폭행을 당한 사건이었다.
흑인 변호사가 그 사건에 대해 묻자, 보안관은 옆에 있던 지팡이로 C.B. 킹의 머리등을 구타하였다.
아니 그러면 그 보안관은?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다.
흑인 인권 운동을 하던 '자유 승차단'이 인종차별이 극심하였던 미시시피주를 방문하려고 하자,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로버트 F. 케네디는 주 정부와 거래를 하였다. 
-- '자유 승차단'을 구타는 하지 말고 체포만 하라고.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F. 케네디에 대해서 민주주의적 진보적인 인물로 기억된다.
역시 사람은 일단 잘 생기고 봐야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다 좋게 보이는 모양이니 말이다.
 
뭐 위의 내용은 하워드 진이 젊었던 1960년대의 이야기이고 지금이야 그렇겠느냐?
그렇다, 버락 오바마를 보라.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 숨은 곳곳에 내재되어 있던 수 많은 백인들의 분노를 생각해 본다.
이후 그들은 트럼프를 찍은 것이 아니라, 단지 흑인의 뒤를 이으려는 힐러리를 반대하였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남의 나라 이야기는 안타깝기는 하지만, 말하기가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다.
얄팍한 생각이지만, 때로는 남의 불행이 나에게는 위로가 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아~ 이 땅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미국에서 노예제의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20명의 아프리카 노예를 태운 배가 버지니아 주의 영국인 정착지에 도착한 게 1619년이고,
집단 이민으로 자체 규약을 통해 공동체를 만든 상징성으로 미국 이민의 조상으로 인정되는 메이플라워호가
메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입항-물론 실수로 목적지가 바뀌었지만-한 것이 1620년이다.
그러니 대충 400년의 미국 역사 전체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흑인 인종 차별'의 역사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게다.
 
물론 1865년 미국 남북전쟁 후 미국의 수정헌법 13조의 개정으로 전국의 '노예제도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위의 극히 사소한(?) 몇몇 예는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60년의 현실이었다.
물론 그들은 당당히 이야기한다.
당연히 '인종 차별'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서로의 편의를 위해서 기본적인 분야에서  '인종 분리'만 존재할 뿐이라고. 
그리고 '분리'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법적인 부분에서 불가피한 '약간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라고.
그 약간의 차이로 수 많은 흑인들은 직간접적으로는 총칼과 몽동이에 의한 무자비한 테러에 의해서나
아니면 국가와 법의 이름으로  또는 그것의 의도적 외면속에 행해졌던보다 광범위하고 후안무치의 폭력에 의해서
차마 여기에 옮기기 힘들 정도로 무참하게 짖밟혀야 했었다.
 
노예 해방이 선언된 지 160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은 모든 인종이나 민족의 시민들이 그 어떠한 정치적 경제적 차별없이 살아가는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전세계에 '툭하면' 당당하게 선포한다.- 당연히 M 16이나 미사일등을 옆구리에 끼고서.
'민족의 자결권과 인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들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 뭐 대충 그런 내용이다.
미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자국을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권력자들도 옆구리에 끼고서 말이다.
 
인간의 의식 깊숙히 잘못 뿌리 내린 관념의 덩어리들이 대(代) 물림되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이것이 단지 교육 환경이나 인식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사악함이나 그런데서 근본을 찾아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기에 인간은 나이가 들거나 시대나 세대가 변하면서 변화 발전하는 존재가 아니라,
약한 본성을 파고 드는 '사악함'에 기꺼이 굴복하고 나아가 더욱 고착 강화하는 존재는 아닌가?  
 
프리모 레비의 책 제목이 갑자기 파고든다
'이것이 인간인가?'
아우슈비츠에서 겨우 살아 남았던 그에게 그 악몽은 영원히 잊혀지거나 지울 수 없는,
심장 저 깊숙히 새겨진 낙인처럼 평생을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여야만 하였던 그의 깊은 고노와 고통들.
과연 가해자들은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가슴에 새길 수 있었을까? 
 
100년전 일본에 의해 치욕적인 민족적 차별을 겼었던 우리들이,
그로 인한 분노가 대(代)를 이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려 안간힘을 쓰려는 이 땅의 사람들이,
조금 먹고 살만하니 이제 우리보다 좀 더 가난한 이들에 대하여 민족적 인종적 차별을 가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마치 60년대 70년대 독일이나 사우디로 미국등으로 넘어갔던 이 땅의 젊은이들.
바로 그와 같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려는 이들이 지금 동남아나 중앙 아시아에서 넘어온 이주 노동자 들이다.
음식 언어 생활 습관등 그 모든 것이 너무도 낯선 이국 땅인 이곳 한국에서 
나름의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 비장한 결심을 하고 넘어온 이들.
 
지금은 그래도 많이 줄어 든 것 처럼 보이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뉴스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 폭력, 임금  착취, 종교적 희롱등
그리고 특히 사회적 약자이며 사각 지대에 놓인 이주 여성-주로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핑계로 팔려온(?)-에 대한
성폭력 가정 폭력등은 우리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한다.
불과 몇 십년전 우리 나라 해외 노동자들이 겪어며 참고 견뎌야 했던 그 차별을 
지금 21세기에 같은 방식으로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조용히 우리에게 와서 귀에 대고 속삭인다.
'이제 조금은 우리를 이해하겠냐?'
우리는 그냥 고개 돌리며, 씩~ 웃으며 물러나야만 하는가?
 
이 땅에 보통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이제 근 80년.
아니, 자본주의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개항의 시기부터 따져 근 150년의 역사를 이야기 해야 하나?
제국주의의 침탈에 의한 식민의 역사, 황당한 이데올로기에 의한 비극적 전쟁의 참화,
분단이라는 희한한 구조속에 양 극단적 대립 대치의 대리전의 현장, 그리고 이어지는 극도의 억압적 사상 탄압의 시대
어쩌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더러운 추악한 반도덕적이고 반인간적인 정치의 쓰레기를 여기 다 부은 것은 아닌지?
 
그 참혹함 속에 겨우 겨우 살아 남은 이 땅의 장한(?) 시민들.
그리고  그들을 이어 다시 분투를 하고 있는 2세대, 또 이어지는 3세대, 4세대들...
조용히 물어본다.
이제 새로운 세대에는 이전보다는 좀 더 나은 가치관, 이성, 도덕등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것인가?
아니면 그 '사악함'이 더욱 강고하게 고착화 될 것인가?
이제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수준의 질문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아야 할 터인데,
과연 우리는 이 과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또 한 해가 저물이 가는 2022년의 12월 늦은 밤.
돌아본 지난 한 해에서 그 희망의 답을 찾기는 너무나도 요원해 보이기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