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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좀 진지하게 생각한 이야기

'용서' - 개에게나 줘 버려라.

배워야 한다, 한참을 더 배워야 한다.

그냥이 아니라 뼈에 사무치게 깊이깊이 배워야 한다.

그들이 적들로 규정한 자들에게 얼마만큼이나 잔인하게 응징하고 짓밟는지를.

이번에도 제대로 배우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이제는 정말 희망이 없다. 그냥 쓰레기가 될 뿐이다.

 

적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

다시는 얼쩡거리지 못할 정도로, 까불 생각도 못하도록 철저히 짓밟아야 되는 것이다.

적들에게 공포를 두려움을 뼛속 깊이깊이 새겨 주지 못한다면,

그냥 전쟁터에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고 무릎을 꿇어라,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오늘날 가장 원망스러운 사람을 뽑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한 명을 선택한다. 

바로 김대중.

그는 왜 이 땅에 '용서'와 '화해'라는 가치를 섣불리 어설프게 뿌리려 하였는가?

그것은 받아들일 자격이 있는 이들이 누려야 할 가치 있는 고귀한 것이거늘

쓸데없이 남용하면서 이 땅의 개쓰레기들에게 간(肝)만 키워줄 결과가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본인이야 고고한 이상을 수행한 훌륭한 인물로 남게 되었지만,

그 구정물을 뒤집어 써야 하는  오늘의 우리들로서는 무슨 횡액을 당한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이미 '염려'는 지나갔다, 냉혹한 현실이 되어 그동안 이룩한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발기고 있다.

그리고 이 광란이 어디로 까지 미쳐 날뛰며 진행될지는,

이런저런 쓸데없는 예측들은 난무하지만, 가장 나쁜 극단을 상상하고 준비하는 것이 정답이 될 것이다.

 

아마, 일반인들은 schizophrenia 환자들을 직접 접해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냥 단순히 소설이나 신문등에서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상상해 보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병적 증세가 심해졌을 때는 일반인의 통상적인 상상을 초월하기 일쑤이다.

그들의 광기가 펼쳐질 때, 특히 그들이 칼 등의 무기를 쥐고 일반인 등을 향해 미쳐 날뛴 이후에,

그들의 병을 깊이 이해하고, 그 피해 가족에게 '그래도 우리가 보듬어 안고 같이 가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수십 년이 아니라 아무리 짧게 잡아 일제 강점기부터라 해도 이제 100년이 넘는 세월

그동안 일제에 빌붙어, 미국에 빌붙어, 군사 독재에 빌붙어, 매판 자본에 빌붙어

'그들만의 공화국'을 만들고 탄탄히 지켜왔던 그들.

그리고 그 밑으로 슬라이딩해 들어가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경주하는 또 다른 새로운 애기 쓰레기들.

그들은 결코 단 하나라도 잃거나 나누어 주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너무도 소중한 것이기에,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내 부모를 죽인 자는 용서할 수도 있으나, 내 재산을 해코지 한 자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의 이익, '그들의 썩어 쓰러져 가는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짓도 감행할 의지가 있다.

 

이런 자들에게 용서니 화해니 하는 개소리가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그래, 지난번의 실수(?)를 이제 와서 어찌하겠는가.

하지만 이제부터는 절대 아니다. 절대 그러지 말아야 한다.

'혁명'이란 이름이 왜 필요하였겠는가?

그들이 선천적으로 태생적으로 폭력 학살 피비린내를 좋아해서?

불가피하기에, 그 불가피함을 알기에, 그 불가피함만이 유일한 길임을 알기에.

 

촛불 '혁명?' - 혁명의 기본을 알기는 한 것인가?

간단히 말해서 가장 기본은 근본적으로 뒤집어엎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그 시절 제대로 뒤집어엎었는가?

이번에는 진짜 그 쓰레기들을 말끔히 씻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