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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좀 진지하게 생각한 이야기

50대에 읽는 책의 의미?

예전 유튜브에서 들었던 강신주 선생의 말이 기억난다.
'20대에 니체를 읽지 않으면 불쌍하지만, 50대에 니체를 읽는 것도 불쌍하다(?)' - 뭐 대충 이런 내용이다.
어찌보면 예전에 '삼국지-연의'를 두고 풍자되던 말과 약간 비슷하다.
뭐, 나이에 따라 처해진 현실에 따라 받아들이는 내용들이 달라지거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의미일게다.
 
예전 팩스턴의 저작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을 재미가 있어 두번을 읽었었다.
18년전에 나온 책이고 두께의 영향도 있는지 그리 관심을 받지 않은 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파시즘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돌아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책이 극우 변호사의 손을 거치는 순간 '문재인 정권 = 파시즘'으로 해석되어 버리는 것을 보고,
참,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상상력의 거침 없음에, 무궁무진함에 다시 한번 놀랐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해석을..., 그런 개소리를..., 우와 대단하다...'
 
강신주 선생의 표현이 기억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작년쯤에 니체의 책들을 다시금 들춰봤으나, 어느 책 하나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었다.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즐거운 학문' '안티 크리스트'등등...
얼마쯤 읽다가 복잡하게 느껴져 접었다가, 다른 책을 들고 읽다가 다시 접고...-뭐 그랬었다.
느낌이,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나 감동등이 반감되었다고 해야 하나?
- 역시, 그래서 나는 진지하게 철학을 공부할 머리는 되지 못하는가 보다-
그러기에 포기 함에도 그리 고민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예전보다는 훨씬 쉽게...
 
수 년 전 우연히 책장을 둘러보는데, 너무도 낯설게 느껴지는 책들이 많다는 것에 놀랬다.
그래서 뒤적거려 보니, 대부분에 읽은 표시가 되어 있었다. 소설책은 표지가 구겨지거나 접혀져 있거나...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대충 어떤 책이라는 기억은 나야 하는데, 도무지 영...
'그래, 고등학생 대학생 전공의 시절등 그 젊은 시절에도 그렇게 수십번 읽고 외웠던 것들도 기억에 없는데,
어찌 한 두번 읽은 오래된 책들이 머릿속에 남아있겠는가.
오히려 쓸데없이 새 책을 사지말고, 이제부터 이 모든 것을 새책처럼 다시 읽어보자.'
 
나름 좋은 의도를 가지고 '다시 읽기'를 시도하였다.
처음에는 완전 새롭다가, 간혹 중간 구석구석에서 어렴풋한 기억들이 살아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다고 기억되는 것은
비록 단기 기억력은 쇠퇴하였지만, 책 전체를 이해하거나 다른 내용과 연관되어 사고하는 폭들은 좀더 넓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망구 내 환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물론 다시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그 내용들은 벌써 가물가물해져 버렸지만...  
 
이번에는 오래된 책을 구입하여 새로이 집어들었다.
좋게 말하면 '고전(古典)'이고, 시쳇말로 하면 철 지난 낡은 사상 서적이라 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의 전집 중에서 '4월 테제'로서 1917년 4월 당시 급박한 혁명의 와중에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블라디미르 일리치'라고 하면 약간 생소할 것이나, '레닌'이라 하면 누구나 '아~'할 것이다.
그러면 따라 나오는 소리가, '아니 지금 갑자기 무슨 레닌이냐? 21세기에 말이다.'
지금 공자를 읽는다고 하여 '춘추 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고, 
지금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등을 읽는다고 하여 아고라를 찾아 헤매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날 문득 '50대에 읽는 레닌은 어떠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한때 그의 저작들은 거의 '바이블' 수준의 경배(?)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트로츠키가 가장 경계하였던 상황 - 즉, 레닌을 박제화해 버림으로서 그 생명성을 없애버리는 것.
그것이 머나먼 러시아에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도 버젓이 행해지기도 하였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이 제대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들은 풍월에 좀 난 체 하는 수준에서 말이다.
 
근 30년 만에 접한 레닌의 글은 역시 예전 20대에 접했을 때와는 첫 맛부터가 달라진 것 같다.
멋도 모르는 예전에는 약간 좀 더 경건(?)하고 긴장하였던 것 같은 기억이 어렴풋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논제의 핵심으로 치고 들어가는 능력이나, 날타롭게 상대방을 비꼬고 농락하는 듯한 분위기는 여전한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계속 머릿속에 의문이 들면서 오늘날과 비교해 본다는 것이다.
역시 古典의 가장 큰 장점은 과거를 읽으면서 오늘을 해석하고 내일을 그려본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주장하는 '노동자와 빈농에게로의 권력 이양'이 과연 현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그것은 실질적으로는 그들을 대표한다는 소비에트와 지식인 계층의 새로운 권력층의 양산으로 귀결되지 않는가? 
'경찰, 군대, 관료의 폐지'라? - 결국은 비밀 경찰과 관료제의 강화로 나아가지 않았는가?
국가 권력에서 '폭력'이 없이 평화라는 거의 종교적 상상으로 그 체제가 유지된다는 환상이 가능하겠는가?
나아가 더 근본적으로, 그런데 왜 노동자와 빈농에게 권력을 주어야 하는거지?
그들이 자본중의에서 가장 핍박받는 계급이기에? 가장 혁명적이고 가장 진보적이기에?
과연 노동자와 빈농들이 진정 진보적 혁명적이고 정치적으로 각성된 계급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어제 저녁에 몇 페이지 읽지 않은 상태에서도 너무 많은 근본적인 질문이 의문이 나온다.
물론 미리 그 결과를 미리 알고서 앞서 있었던 논제들을 평가하는 것은 약간 치사하고 무리가 있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팔뚝의 붉은 혈관들이 불뚝불뚝 뛰는 것 같은 그 격렬한 혁명의 와중에서
그 위대한 천재의 생각은 어떠하였는가를 천천히 더듬어 보는 시간으로도 족하지 않은가 싶다.
'50대에 , 그것도 2022년에 레닌이라... 일단 계속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