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왕(湯王)이 걸왕(桀王)을 추방한 것은 옳은 일인가?'
주군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만을 강요하던 조선 시대에 던진 이 질문.
흔히 우리가 다산의 '역성 혁명론'이라 불리는 '탕론(湯論)'의 첫 문장이다.
첫 문장이니 만큼 그 강렬하였던 인상은, 접한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새겨진다.
또 하나 '풍수론(風水論)'에서 어버이의 길한 묘자리를 찾는 풍속에 대하여는
'그 어버이를 묻어서 복을 구하는 것은 효자의 정이 아니다.'라는 그의 명쾌한 답변은
그 당시의 인습에 비추어 지금도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吉地를 찾아 수백억원의 국고를 아낌없이 낭비하여도 비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땅의 쓰레기 언론이나 정상배 무리들의 지랄들에 쓴 웃음만 날리게 하며서 말이다.
그러면 뭘 하나,
이미 그를 알아주지 못하는 권력에 의하여, 그를 배척하는 권력에 의하여
한양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진 거의 이 한반도 땅끝으로 밀려 와야만 했던 것을.
남도 유배길의 시작은 애매하다.
역시 유배길은 서럽고 초라해야 제 멋이 나는 것인가?
출발점도 없고, 그러니 마침표도 없었다.
그냥 '카카오 맵'에 등록된 길을 찾아 따라갈 뿐이다.
그러고 보니 '유배길'이 그러하구나.
스스로 원한 길이 아니니, 그냥 그렇게 끌려서 따라가는 길일 수 밖에...
저 멀리 두륜산 과 주작산의 좌측 암릉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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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덕룡의 연계 산행은 하였지만, 주작산의 정상은 가보지를 못하였었다.
주 능선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기에.
이번에도 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왕복으로 둘러 본다.
- 이 길을 가면 진정 봉황이 양 날개를 펼친 듯 한다는 주작의 본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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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수국이 시들어 가는 모습인 것 같다.
장미와 수국은 피어 날때는 어디에도 견줄 수 없이 아름답지만,
지는 모습은 벚꽃이나 철쭉 등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고 구질구질한 것 같다.
'이쁜 것들은 다들 이런가?'
첫날은 숙소와 식사 문제로 대충 정리하고 강진 군청 읍내로 들어갔다.
읍내 국밥집에서 배를 채우고 혼자 낯선 모텔로 들어갔다.
이른 시간이라 걱정이었지만, TV를 보다가 불을 끄니 잠이 들어 그래도 다행이었다.
다음날 아침, 다시 도암면으로 나와서 길을 이어 나간다.
이제 주작-덕룡의 주 능선은 끝나고 석문산-만덕산의 능선이 이어지려 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다산 선생의 흔적'이 묻은 곳으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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