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심장 F/U 검사'에서 나쁜 소식을 접하고 잠시 우울하게 있다가,
이리 저리 마음의 정리를 하고 나니, 다시 길이 그리워져서 떠나 본다.
길이 시림들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은 단순히 그 경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길 속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 흔적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해석들로
더욱 풍성해지거나, 보다 피폐 초라해지기도 한다.
지리산이 딱 그러하지 않은가?
흔히 지리산과 설악산을 비교하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지리산에 보다 많은 방점을 남기고 싶다.
설악산의 그 화려함과 기괴함은 타성을 자아내기 충분하지만,
그 곳에는 사람의 내음이 흔적들이 느껴지거나 읽혀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어딘가 불편하고 힘들게 느껴지는 시간에는 지리산을 들러곤 했는가 보다.
판교에 사는 이와 시간을 조율해 가능한 일찍 금계마을 들머리에 섰다.
지리산 둘레길이 제주도 올레길보다 인기가 없는 이유 몇가지를 들자면,
버스등 교통등의 불편함과, 음식점및 숙박 업소의 빈약함일 게다.
이 날도 4,5 구간을 걷기 위해서는 제법 서둘러야 하였다.
그렇다고 전날 저녁에 내려 오기는 거시기 하기에 새벽부터 설쳤지만,
들머리에서 준비를 마치고 나니 벌써 09:30쯤이다.
저 멀리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언제부터 저런 대 공사가?
1년전에도 이 길을 걸어었는데? 그때도 있었나?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우리의 기억은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
흔히 '목격자의 증언'이라는 것이 얼마니 쓸데없고 가치가 없는 지 다시 한번 느낀다.
이제 4구간에서 가장 힘든 '서암 정사'와 '벽송사'를 지나는 구간이다.
이제 '벽송사'에서는 도인송과 미인송에 대한, 그리고 입구의 나무 장승으로 기억될 것이다.
불과 70년전 수천의 사람들이 역사의 비극속에 사라져 간 그 아픈 흔적들은 그냥 묻혀둔 채로 말이다.
이현상을 위시한 빨치산들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었던 벽송사.
그리고 저 뒷산 어딘가에는 '제 5 지대'의 사령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의 당사자들은 이제 모두 사라져버렸고,
남은 자들은 모두가 그 기억들에 대해서는 외면해 버리려는 현실에서
벽송사 경내에는 스님의 독경 소리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최근 정부에서는 조선 총독부 건물을 복원하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왜 그러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알고 싶거나 따지고 싶지도 않다.
미친 년놈이 무슨 개지랄을 하더라고 그 나름의 이유는 있는 법이니 말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을 마치고서 이전 식민체제에서 관리로 등용되었던 세력이
새로이 독립된 나라의 권력을 움켜쥔 나라는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고 딘 디엠을 내세운 남베트남이고, 또 하나는 박정희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두 나라는 지독히 비극적인 내전을 겪어야만 하였고.
그러기에 이 땅에 일본의 잔재에 대해서는 침묵만이 강요되어지고,
사상이나 이념이라는 허울속에서 비참하게 사라져간 동족의 피눈물에 대해서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개거품을 물고 지랄 난리 부르스를 쳐야 속이 시원해지는 이들 속에서
지리산은 오늘도 묵묵히 하루를 보내고 있는 가 보다.
불과 2~3일 전부터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가을을 느끼게 하였지만,
그래도 아직 한낮의 산행은 여전히 힘들다.
더구나 처음부터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니 등줄기에 땀이 흥건히 맺힌다.
작은 계곡에 잠시 넋을 놓고 찬물 한잔을 마시며 쉬어간다.
곧 용유담이 장관이 펼쳐지고...
이제 4 코스를 마치고 길거리 식당에서 허겁지겁 배를 채운다.
막걸리에 사이다(2통 1반)는 더운 여름날 영원한 진리일 수 밖에 없다.
반찬이 맛있었는지, 허기가 반찬인지 헷갈리지만 배가 터지게 집어 넣었다.
출발 하려니 숨이 차는 듯 하다.
아~ 이 한심한 초라한 식탐에 대한 집착은 언제쯤 철이 들려나....
숨을 헉헉 거리면서 5코스를 출발한다.
중부 지방은 폭우로 고생이지만 남부 지방은 가뭄으로 고생이라 하였는데,
어제 경주만 하더라도 보문호가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은근히 걱정을 하였는데,
역시 지리산에는 여전히 풍부한 수량으로 계곡미를 잃지 않았기에 다행이라 여겨졌다.
'상사 폭포'에도 제법 세찬 물살이 운치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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