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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등의 후기

2023년 낯설지 않게 읽혀지는 '미국을 노린 음모'

개인적으로 미국이나 일본 소설에 대해서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한다.
'위대한 캐츠비', '노인과 바다', 호밀밭의 파수꾼' 등이 왜 그리 각광을 받는지 솔직히 내 수준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필립 로스', 매년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면서도 이제는 세상을 떠났기에,
수상 가능성이 없어져 버린 그 작가도 나에게는 그러하였었다.
'에브리맨',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등에서 접해봤지만,
역시 타 미국 작가들과 비슷하게 그리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그가 왜 그 많은 상을 수상하고 노벨상 후보로도 그리 자주 거론되는지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여름휴가로 홀로 알프스 트레킹을 다녀온 후유증인지,
뭔가 붕~ 뜬 기분으로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기에 이리저리 뒤적거리다 우연히 발견한 책.
제목부터가 약간 유치한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배경 설정이 약간 특이하게 느껴져 구입 도서 목록에 올렸다.
-- 솔직히 뭐,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형식은 실존 인물들을 모델로 구성한 가상 정치 소설이라 할 수 있을게다.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루스벨트에 대항하여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비행사 찰스 A 린드버그.
그는 일반인들에게는 최초의 무착륙 대서양 횡단 비행사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뿌리 깊은 히틀러를 추종하는 지독한 반유대주의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시기에 실시한 미국 대선은
'미국 우선주의'로 2차 세계대전 절대 불참을 강력히 주장하는 린드버그가, '간섭주의'로 참전을 주장하는 루스벨트에게 승리한다는 설정으로 소설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유럽은 히틀러의 침공으로, 아시아는 일본의 침략 전쟁 등으로 전 세계가 전쟁터로 변해 버린 힘겨운 시기에,
미국의 전쟁 불참은 미국민에게는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면서 정치적으로 강력한 지지 세력을 형성하게 되지만
결론적 실질적으로는 추축국인 일본 이탈리아 독일등에 강력한 지원 세력이 되기에 이르고,
자연스럽게 미국민 내에서는 나치등의 인종주의 및 반유대주의가 더욱 강력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하여 미국의 국내 정치는 점차 걷잡을 수 없는 격렬한 대립의 혼란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소설은 작가가 태어나 자란 유대인 거주 지역인 뉴어커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전통적인 유대인 가족이 위기의 시기에 세대별로 사안별로 분열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세밀하게 펼쳐가는 과정이 제법 재미있고 탄탄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내가 본 몇몇 가상 정치 소설이 그러하듯 마무리에 가면서 황당한 사건으로 어설프게 종결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즉 정치적 대립과 폭력적 시위가 격화되는 와중에 대통령인 린드버그가 비행기를 타고 가다 갑자기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서 부통령이 권한 대행을 하면서 내무 장관인 헨리 포드가 루스벨트를 비롯한 민주당 유대계 유력 인사들을 구금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고,
갑자기 비밀 특공대에 의해 군병원을 탈출한 냉철하고 현명한 영부인에 의해 대통령 선거가 요청되고,
이어 루즈벨트가 당선되어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서 소설은 마무리를 하게 된다.
(헨리 포드? 맞다. 포드 자동차의 바로 그 사람이다.
동시에 린드버그와 함께 히틀러에게 '독일 독수리 공로 훈장'을 받기도 한 지독한 반유대주의자 이기도 한 그 포드이다.)    
 
황당하게 여겨지는 결론 부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하여 이렇게 길게 언급하는 이유는 
역시 2022년 이후의 이 땅의 정치적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는 않다.
-- 그들은 꿈 속에 살고 있고, 우린 악몽 속에 살고 있는 거지.
--"무엇 때문에 화를 내나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해서지."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어떻게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이 나라를 맡게 되었을까?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내가 환각을 일으켰다고 생각할 거야."
2022년 봄 이후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그 감정과 어떤 차이점을 가질 수 있을까?
 
역사의 범죄자들은 작은 일로 시작하고, 그래도 별 문제가 없거나 경계의 목소리가 높지 않다고 여겨지면,
그때부터 그들은 본격적인 확전(擴戰)을 시작하게 된다.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황당함으로 가득 채울 때까지,
사람들이 도저히 이성적으로 용납하지 못할 수준으로까지 말이다.
물론 조금 늦추거나 낮추는 정도의 조절이야 뒤따르겠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초기 목적으로, 아니 스스로 조절이 안 되는 폭주열차처럼 '더 넘어'로 까지 나아간다.
 
소설의 마지막을 덮고서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본다.
미국에서 2004년에 출간된 이 소설이 만약 2020년경에 이 땅에 번역되어 나왔다면 어떻게 읽혔을까?
더구나 문학 동네 출판사는 왜 이 책을 2023년 5월에 우리나라에서 초판을 발행하게 되었을까?
출판사도 가장 자본주의적인 기업의 일종이다.
정치적 후진성과 집단적 광기에 휩싸인 듯한 군중들의 망상,
그리고 그들의 등에 올라타 권력의 칼날을 휘두르려는 '역사적 범죄자'들의 욕망.
그로 인해 짓밟혀지는 오늘날 이 땅의 역사, 경제, 문화 그리고 바다를 비롯한 자연 생태계 등등.
자본에 극히 예민한 출판사의 촉을 건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을게다.
요즘이야 말로 이 책이 이 땅에서 제대로 팔리겠다는 판단을 하지 않았겠는가?
 
"여긴 우리나라예요"
"아니에요, 이젠 아니에요. 여긴 린드버그의 나라예요, 그들의 나라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