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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등의 후기

'와일드 후드' - 묘하게 와닿는 책

'북 파워셀러' 라고 하면 단어가 되는가?-어설픈 영어로 만든 콩글리쉬인가?-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유명세에는 유시민의 영향이 컸다고 작가도 언급하곤 한다.
이 책 '와일드 후드'도 표지의 '유발 하라리'의 사진에 먼저 눈이 간 것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더구나 '모든 날것들의 성장기'라는 부제적 타이틀도 제법 관심을 끈 것도 있었다.
 
'와일드후드'라?, 그냥 느낌상 거친 시기 또는 질풍노도의 시기 같은 그런 뜻이겠지 싶었다.
하지만 사전을 찾아보니 'wildhood'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냥 이 작품을 쓰면서 작자들이 새로 조합하여 만든 단어라 한다.
어 'wildhood'라는 영화도 있는데? - 2022년에 제작된 영화로 어느 것이 먼저인지를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비록 새로 만든 단어라 하지만, 그 느낌이 너무도 생생히 전달되게 잘 만들지 않았나 싶다.
 
책 내용은 제목과 같이 유년기에서 성인기 사이의 시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동물들의 보편성을 다루고 있다.
이제 내 나이 50 중반을 넘어가고, 하나 있는 딸도 20대 후반을 넘어가는 시기에 조금 늦은 것은 아닌가?
 
책은 전체적으로 몇몇 상징적인 동물들의 삶을 추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죽음의 삼각지대를 주기적으로 진입하는 청소년기의 캘리포니아해달
레오파드바다표범의 위협속에서도 홀연히 바닷속으로 떠나는 사우스조지아섬의 킹펭귄(우르술라)
탄자니아 응고롱고로 분화구에서 서식하는 새끼 하이에나(슈링크)
대서양 연안의 스텔웨건뱅크와 실버뱅크를 연래 이동하며 번식하는 혹등고래(솔트)
슬로베니아에서 출발하여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늑대(슬러브츠)
저자는 수년에서 수 십 년간 이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와일드후드' 시기에 겪는 4가지 어려움을 설명한다.
- 어떻게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것인가?
- 어떻게 사회적 지위에 적응할 것인가?
- 어떻게 성(性)적 소통을 할 것인가?
- 어떻게 둥지를 떠나 스스로를 책임질 것인가?
 
처음은 그냥 보편적인 내용으로 이어진다.
'청소년기가 뭐 다들 그렇게 어렵겠지, 아니 살아가는 게 어디 쉬운가?'
- 어느덧 애는 이미 커 버렸고, 나도 늙어 가는 마당에 이제와서 이런 것들을 가지고 고민하여야 하나?
하지만 내용이 점점 진행되면서 어느듯 이들이 '둥지를 떠나는 문제'에서는
'아~ 남의 일이 아니구나'라며 좀 더 집중하게 되지 않은가 싶다.
다시 한번 내가 자라왔던 과정을, 내가 자식을 키웠던 과정 등을 돌아보고
나아가 이제 어느덧 나이가 된 딸이 언제 어떻게 독립해 나가야 하는가 등에 관하여.
 
당연히 이 책에서 어떤 해답이나 해결책을 주지는 못한다.
하기는 그것을 기대하는 것 조차가 어불성설일 뿐일 게다.
홀로 때로는 무리 지어, 너무 빠르지 않게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때로는 실패를 겪으며 성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결정적 실패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기도 하는...
그러기에 다음의 한 문장이 너무 가슴에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세상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  
 
흔히 전생에 큰 은혜를 입었거나 죄를 지은 이가 자식으로 태어난다고 하기도 한다.
예부터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힘든 과정이기에 그런 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을게다.
하지만 키우는 어른들만 힘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온갖 어려움 속에서 부딪히고 싸우고 배우며 그리고 성장해 가는 당사자들이 더 힘들지 않을까?
아마 우리도 그 시절에 그런 생각을 하였을게다.
 
처음에는 읽기에 조금 지나 버린 나이가 아닌가라는 느낌이었다면,
갈수록 지금의 내 나이에 너무도 절실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 책이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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