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돌아보면서 '장기(長期) 19세기'와 비교하여 '단기(短期) 20세기'라 자주 인용하면서
동시에 책 제목으로는 '극단의 시대'를 뽑았었다.
그리고 14세기 '자크리 농민 전쟁'을 다룬 이 책은 제목으로 '야만의 시대'를 뽑았고.
하지만 20세기를 '야만의 시대'라 한들, 14세기를 '극단의 시대'라 한들 별 차이가 있으려나?
14 세기의 종교, 토지, 왕권을 둘러싼 극단적인 대립의 역사를 논하면 '극단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으려나?
제목(Title)은 다들 그렇게 뽑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보다 관심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
'유토피아'의 서문에서 토마스 모어는 여러 번 반복한다.
이 책에서 자기가 한 역할은 그냥 받아 쓰기에 불과할 뿐이고, 모든 내용은 '라파엘'의 독백 설명에 따른 서술일 뿐이라고.
그러면서 그는 하나하나 설명하고 주장한다.
세상의 모든 악(惡)의 근원은 '사유 재산'이기에 이것을 없애야 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관리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회 제도, 하루 6시간 노동, 공공 주택, 비밀 투표, 종교의 자유, 남녀의 평등 교육 등등을 말이다.
결국 토마스 모어는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자신의 입으로는 너무 부담됨을 알기에,
에라스무스가 '우신(愚神)'을 통해 이야기를 하듯이,
듣도 보도 못한 포르투갈인 탐험가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를 불러내어 그의 입을 빌려 마음껏 떠들었던 것이다.
3.
이 책 '야만의 시대'를 읽는 와중에도 위와 비슷한 의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던 것이 사실이며, 아직도 반신반의한다.
14세기 '자크리 농민 전쟁' 그 중심에 있었던 저자가 수도사가 된 아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편지와 같은 형식을 가진 이 글을, 19세기에 한 연구자가 우연히 발견하였다?
그래서 어설픈 라틴어로 된 글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제대로 된 책으로 출판을 한다?
14세기에 단두대가 출현하고-단순한 편역자의 오류일까?-, 14세기에 프랑스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라?
그 백년전쟁의 시기에 농노들에게 영주와 왕 그리고 사제들의 존재는 깊이깊이 각인되었겠지만,
'프랑스 조국'의 자유에 대한 열망등은 너무 생소하게 느껴질 따름인데...
바로 그 백년전쟁에서 하나의 전설이 되어 버린 잔다르크
패배로 치닫고 있는 프랑스에게 결정적 전세를 뒤집고 샤를 7세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의 대관식과 축성식을 이끈 그녀.
과연 그녀를 화형장으로 끌고 간 이들은 누구였던가?
바로 프랑스 부르고뉴 공작령에 속한 보베 주교를 비롯한 '파리 대학 신학부'가 아니었던가.
이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나에게 바로 이 시기에 '조국 프랑스'라는 단어의 반복은 너무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간단하게나마 검색해 본 자료에서 이 자료의 진실성 여부에 대해 별 다른 언급은 없었다.
그러기에 아마 나의 예상과는 달리 14세기의 기록이 맞을 것이며,
부분적으로 편역자의 수정이 가해지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마르셀이라는 저자가 자기 부인의 '초야권'을 지키는 과정은 너무 소설 같으며,-마치 '데카메론'의 한 단락처럼?-
저자의 장인인 '자크 카이에'의 반란을 준비하는 과정은 너무 도식적이고 작위적인 분위기이며
- 갑자기 몇십 년 못 만난 형을 만나고, 도끼 12자루를 구입하고, 장인을 재판 직전 빼돌리는 과정 등등-
특히 편역자나 번역자의 오류인지 모르겠으나 14세기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반복등으로 말이다.
4.
물론 19세기의 콜랭 드 플랑시라는 인물이 그의 표현대로 우연히 발견한 어설픈 라틴어로 작성된 이 문서를 프랑스어로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자유사상가로서 편역자 나름의 시대적 정치적 의미를 첨가하는 것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본다.
어차피 이 책이 공식적인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문서가 아닌 이상에 말이다.
그러기에 그 내용은 다시 세기(世紀)를 넘은 오늘날에 새로이 이해되고 해석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내가 책을 읽는 내내 그 진실성 여부에 지속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1312년에서 1369년까지 가장 비참한 노예 중 하나인 마르셀의 생애'에서 언급되는 그 대부분의 내용이
20세기에서 21세기를 넘어오며 느낀 시대적 갈등과 야만성과 그리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이런 내용이 진짜로 14세기에 써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말이다.
5.
1358년 자크리 농민전쟁이 진압된 이후
'농촌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것은 무덤의 평화였다. 30만 명이 넘는 농부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1306년에는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한 다음... 그들을 프랑스에서 추방했다. 그해 2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죽었다.'
'대법관이 수녀의 치마 하나를 훔친 불쌍한 여자를 생매장하도록 한 것은 1302년이었다.'
'교회는 파문이라는 벼락으로 왕과 민중을 지배했다.... 생쥐와 벌레조차도 파문되었다.'
'프랑스 전체가 수도사, 점성술사, 점쟁이 그리고 마법사들로 꽉 찼다.'
황당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설마 이 정도일리가...
하지만, 21세기 오늘날 점쟁이 역술가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되는 2023년의 대한민국을,
COVID 백신에 대하여 그리도 황당한 말도 되지 않는 괴담을 퍼뜨리든 그들이
이제는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에 대한 수 많은 과학적 비판에 대하여 괴담이라 일축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익에 위반된다고 판단될 경우 사법적 처리까지 불사하겠다고 위협을 하고 있는 이 현실을,
2123년의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황당하네, 설마 그 정도였을리가..."
6.
책 내용은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농노의 집안에서 태어난 저자 마르셀은 지독한 영주의 폭정에 의해 가족이 죽임을 당하거나 찢어지고,
그래도 자신은 다행히 오귀스탱 신부의 도움으로 글을 배우면서 살아가게 된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나름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듯하였으나,
영주와 수도사들의 폭정에 결국 장인인 '자크 카이에 -농민 반란의 지도자-'와 함께 반란을 주도하게 된다.
반란의 실패 이후 숨어 살다가 결국 과거 신분이 드러나 죽음을 당하기 직전 수도사인 아들에게 편지를 남기게 된다.
하기는 대부분의 글이나 소설들이 특별한 내용을 가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보편적인 일반적인 내용들. 이미 조금은 익숙한 뻔하기 까지 한 이야기들의 전개 과정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개되는 깊이와 격동 진실성과 감동등이 작품의 격(格)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7.
14세기 봉건제와 종교적 광기 속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싸워 나갔던 저자는
오직 힘 센 자들만이 모든 것을 가지고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었던 그 '야만의 시대'를 돌아보면서
19세기에 그의 글을 편역 한 저자나, 21세기에 다시 그 글을 훑어보는 우리들에게 다시금 물어본다.
과연 너희들은 '야만의 시대'를 벗어난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2023년 이 대한민국에서 나름의 답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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