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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등의 후기

'영혼의 순례길' - 가슴이 먹먹해지는 영화

3년 전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예약하였었다.
일정상 전체는 어렵기에 레온에서 산티아고까지 300여 km를 12박 14일, 그러니 10일 정도를 걷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필이면 당시 코로나 사태로 결국 위약금을 물고 취소를 하였다.
나는 왜 그 길을 갈려고 하였을까? 그리고 지금도 가려고 하는 걸까?
그냥, 남들이 가는 길이기에, 다들 좋다고 하기에, 나름 유명하다기에...
혹시 종교적 이유로? Oh, 절대 No이다. 
나는 여전히 강경한 '反종교주의자'임에 틀림이 없으니 말이다.
 
히말라야의 그 많은 산군들은 8000m를 넘는 것만 하여도 14좌이며, 이미 모두 인간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러기에 이제 5000~6000m 정도의 높이는 훈련된 일반인도 장비를 가지고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시대이다.
하지만 6700m 정도-아직 정확한 측정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의 높이임에도 그 누구도 정상을 밟지 못한 산이 있다.
바로 '카일라스(수미산須彌山)'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세상의 중심이자 우주의 근원으로 여기며 힌두교에서도 쉬바신이 거처하는 곳으로 여겨지는 곳으로
그 정상에는 지고한 초월적 힘의 보이지 않는 사원이 있다고 믿어지는 곳이다.
아직까지 미답지로 남아있는 것은 험하고 높은 것도 이유겠지만, 그 神聖스러움으로 등반 자체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정상을 가지는 못하지만, 그 주위를 순례하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트레킹 길과 순례길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티베트의 망캉이라는 외딴 곳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11명의 마을 주민들.
코라(순례)라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려는 늙은이, 동물을 너무 많이 죽인 괴로움으로 거의 알코올 중독으로 지내는 백정,
임산부와 그 가족, 어린 여학생, 그리고 집을 짓다가 인부 두 명이 죽은 이 등등.
너무도 평범한 이들의 거의 1년을 계획하고 떠나는 길고도 긴 순례길이다.
비상식량으로 겨울날 야크와 양등을 잡아 고기를 말리고, 식량을 준비하고
굵고 잘 말린 목재와 방한 방풍용 뚜꺼운 천막, 그리고 두툼한 침구류 등등을 트랙터에 싣고 마침내 그들은 떠난다.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여학생을 비롯하여 대부분은 오체투지(五體投地)로 그 먼 길을 나아간다.
늙은이와 임산부는 오체투지가 불가하기에 맨 앞에서 보행으로 나아가고.
하지만 중간에 임산부도 출산을 한 이후에는 며칠 쉬고는 같이 오체투지로 진행을 한다.
五體投地라, 이마 왼쪽 팔꿈치 오른쪽 팔꿈치 왼쪽 무릎 오른쪽 무릎을 땅에 던지는,
神앞에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어 나아가는 수행길.
하지만 2400km의 도로와 흙 길, 힘든 오르막과 내리막길, 눈보라와 폭우 등등.
길어도 너무 긴 길이요, 힘들어도 너무 힘든 길이 아닐 수 없다.-영상만으로도 말이다.-
 
중간에 트랙터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순간 저 무거운 짐은 어떻게 옮기나 싶어 걱정하였는데,
그들은 별 고민 없이 바로 트랙터를 버리고 사람의 힘으로 그 무거운 수레를 끌고 나아간다.
그리고 그 길을 돌아와 오체투지로 '다시' 나아간다.
너무도 긴 눈보라 치는 오르막길에서도 누구 하나 불평하거나 투덜거리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나아가고.
- 혹시 설정이 아닐까? 의심하는 이가 있다면, 스스로에게 너무 자본주의에 찌들지 않았나라고 묻을 수밖에 없다.-
 
라싸에 이르러 돈이 떨어져 몇 달을 기거하며 돈을 모으고, 다시 '聖山 카일라스(須彌山)'으로 나아간다.
해발 5000m를 넘는 그 순례길을 다시 수레 짐을 끌고,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五體投地로 나아가고...
너무도 힘든 과정에 늙은 몸으로 같이 五體投地로 나아가던 삼촌은 그 길에서 유명을 달리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다.
이 聖山에서 삶을 마감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福이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다시 그 순례길을 이어 나아가고... 
 
흔히 이런저런 순례길을 생각하면서 나름 머리에 떠다니며 담아 두았던 여러 감상들.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나를 찾아서? 삶의 존재론적인 의문을 찾아서?
하지만 이들의 순례길을 보면서 그런 유치한(?) 입에 발린 질문들은 깨끗이 씻겨나가 버리지 않았나 싶다.
오직 神을 향한 마음 하나만으로 가득한 그들에게 다른 질문들은 蛇足에 불과하지 않은가 싶다.
더구나 11명이라는 단체가 1년이 넘는 기간을, 그것도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엄청난 고난의 여정에서
당연히 어떤 사소하거나 제법 중요한 문제로 인한 언쟁이나 갈등 아니면 분쟁의 소지가 있었을 법도 한데,
오직 기도와 기다림 그리고 일의 분담과 노동등으로 모든 것을 이겨나가는 그들의 모습에
경이로움과 존경심마저 솟아나는 듯하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언젠가 몸이 나아지면 계획하는 길들-순례길이든, 아니 다른 길이든-에서 하나를 추구한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안고,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나아가야 할까?
 '영혼의 순례길' - 참으로 너무도, 좋은 훌륭한 아름다운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