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끝을 보는 순간 드는 의문
'딸이 떠난 것인가?', 아니면 '아빠가 떠난 것인가?'
'leave no trace' - 내 수준의 영어로 번역을 하자면 '흔적도 없이 떠나라'?
영화는 공동체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여 자연 속에 살아가는 PTSD에 시달리는 제대 군인과 그 딸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우연한 접촉(?)을 계기로 정부 당국에 발각된 그들은 사회로 돌려보내지지만
결국 집, 직장, 교회 그리고 사람들에게 적응하지 못한 아빠는 다시금 먼 길을 떠나게 된다.
처음에는 순순히 아빠를 따르던 딸은
조난 위기를 겪은 후 찾은 조그마한 숲 속 공동체에서 다시 또 떠나려는 데에서는 단호한 결정을 내린다.
'머무실 수 있었더라면 머무셨을 걸 알아요.'
중간중간 딸은 정착된 삶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지만, 그렇다고 아빠의 마음을 삐뚤게 해석하지는 않는다.
도저히 어쩔 수 없기에 사람들에게서 떠나야만 하는 아빠의 정신적 고통과 그 힘겨움을 너무도 잘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삶을 살려고 한다.
도서 ' Wildhood'에서 청소년기의 4가지 주요 어려움 중의 마지막 '어떻게 둥지를 떠나 스스로를 책임질 것인가'
영화 초반부에는 아빠가 군대에서 배운 약간 유치해 보이는 '생존 게임'으로 딸을 단련시키려 한다.
하지만 막상 정부 관리들(수색견犬)에게 발견된 이는 오히려 바로 아빠이다.
버스와 트럭을 타는 과정에서도 소심해진 아빠와 보다 적극적인 딸의 모습은 점점 대조를 이루는 듯하다.
아빠는 음식 등을 구하려 딸을 오두막에 남겨두고 혼자 떠나지만,
결국 발목 부상으로 조난을 당하고 딸과 주변인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를 벗어난다.
처음에는 그냥 어리게만 보였던 딸이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어른이 되면서 더욱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개인적으로 20대 후반의 딸 하나를 둔 아빠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된다.
그러기에 여전히 헷갈린다.
과연 딸이 떠난 것인가? 아니면 아빠가 떠난 것인가?
영화의 초반에는 흔한 미국 영화의 소재인 PTSD를 겪는 제대 군인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다.
아니다. 이것은 치열한 현대의 삶에서 돌이킬 수 없는 너무 깊은 상처를 입은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저런 나름의 이유로 너무 깊고 아픈 상처이기에 도저히 세상에 머물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여전히 딸은 나무에 꼭 필요한 음식이 든 가방을 매달아 놓고, 빈 가방을 챙겨 온다.
너무 힘들고 외로운 삶이지만, 항상 그들과 소통하고 함께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느낌?
자연 속의 삶을 소재로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어 안는 듯한
별로 대단한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려고 노력하는 '착한 사람들'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딸이 어느덧 어른이 되어 큰 도움이 되거나, 때로는 나아가 이끌어 가는 모습들.
한때 'healing'이라는 단어가 널리 유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든 healing에는 크던 작던 'scar(상처)'가 남기 마련이다.
그 상처를 상처 그대로 받아들여야만이 제대로 healing이 되는 것이다.
흔적이 있던 없던 관계없이, 상처가 있던 없던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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