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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등의 후기

'군중' - 그 무거운 이름

*** 군중과 권력 - 엘리아스 카네티, 1960년
*** 대중의 미망과 광기 - 찰스 맥케이, 1841년
*** 군중의 망상 - 윌리엄 번스타인, 2021년
 
한때 서점가(?)에 '흑역사 시리즈'물이 제법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진실의 흑역사', '인간의 흑역사', '종교의 흑역사' 등등
제목으로부터 느껴지겠지만 역사적으로 황당하게 느껴지는 사건 사실들을 나름 재미있고 읽기 쉽게 엮은 책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웃을 일들이 그때는 광풍이 되어 사람들의 뇌리를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였으며,
더구나 일부는 아직도 그 거짓들이 마치 진실처럼 우리들에게 인식되곤 한다는 것이다.
 
만약 '큰 이익을 가져다줄 사업을 운영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회사'라고 소개되는 주식회사가 있다.
과연 여기에 투자할 사람들이 있을까?
1720년대 주식 열풍에 휩싸인 영국의 많은 투자자들이 이 사업에 투자를 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곧 쪽박을 차게 되면서 영국은 '거품법(Bubble Act)'으로 민간인의 주식회사 설립에 제약을 두게 되었다.
만약에 '젬페르 아우구스투스'라는 튤립 중에 최고 품종 한뿌리와 12 에이커(14690평)의 땅을 교환하려고 한다면?
실제로 제안이 이루어졌고, 거래가 아마 성사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이 말도 되지 않는 광풍 속에
영국은 자본주의의 본 고장이 되었고, 네덜란드는 여전히 튤립의 나라라 불리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군중(群衆)' - 참 다양한 단어로 불리기도 한다.
시민, 인민, 민중, 국민, 대중...
그들은 평범하게 일상의 삶에서 그리 두각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 집단적으로 몰아치는 '힘(Power)'이 되었을 때는 그 무엇으로도 제어하기 힘든 존재이다.
그러기에 개인에게서 광기는 보기 어려우나, 집단에서의 광기는 수시로 드러나곤 한다.
그것이 정치적 표현이 되든,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의 열풍으로 나타나든, 가짜 뉴스에 편승한 말 그대로의 광기가 되든...
 
이 세 권의 책은 나름의 결들이 다르게 읽힌다.
엘리아스 카네티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결정적 계기라 여겨지는 '군중과 권력'은 
'군중'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깊은 성찰과 다양한 분석을 보여주지만,
비록 600페이지를 넘는 두께지만 글이 너무 무겁거나 어렵지는 않아 같이 고민하며 읽기에 무난하게 여겨진다.
대중의 미망과 광기는 저자가 27살의 어린 나이에 출판한 -나를 약간 우울하게 만드는...- 책으로,
근대의 시점으로 바라본 종교, 경제, 연금술, 십자군, 독살 나아가 도둑이나 결투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보여준 '군중의 미혹'에 대하여 재미있게 서술한 책이다.
그리고 최근 출판된 '군중의 망상'은 저자의 전문 분야인 경제에 대한 분석이 특히 눈에 띄는데, 
문제는 내가 주식이나 경제 등에 대한 지식이나 개념이 부족한 게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 외에도 20세기에 이해되기 너무 어려운 종말론이나 국제적 정치 관계에 미친 종교적 광기, 
또는 다른 사회적 제반 주제들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내용들을 재미있게 엮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광기'가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순간에는 결코 스스로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거품 주식회사에 대해서 그리 열변을 토한 저자 '찰스 맥케이'
정작 그는 1840년대에 불어 닥친 영국의 철도 투자 열풍에는 열렬히 지지하는 논조의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1720년 영국의 남해회사 버블 당시 조폐국 가사로 25년째 재직 중이었던 아이작 뉴턴
그는 결국 당시 2만 파운드의 손해를 보면서 쪽박을 차게 되었다.
한화로 3200만 원을 넘으니 대충 오늘날로 치면 약 25억(그 이상) 정도의 손해로 추정한다고 한다.
당시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는 말이 돌았다고 하니,
인류 역사상 최고 두뇌 중의 한 명인  아이작 뉴턴, 도대체 그의 충격은 어떠하였을까?
이런 뻘짓에 빠지지 않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윈스턴 처질이다.
1915년 1차 대전 사상 최악의 삽질 작전(뻘짓 작전)으로 불리는 '갈리폴리 전투'에서 모든 것을 잃은 듯한 그는
1929년 대공황 시기에 다시 주식을 구입하여 완전 쪽박을 차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이후 빚을 갚기 위하여 미친 듯이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해야만 하였다고 하니...
 
이 군중의 광기에서 우리나라라고, 아니 나 스스로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게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다.'
어쩌면 그러기에 더욱더 집중해지고, 때로는 무릎을 치면서, 때로는 웃픈 감정이 함께 하지 않았나 싶다.
결코 가볍거나 얇지는 않은 세 권의 책이지만,
그 흐름과 연관성 등에 비추어 나름 깊이 새겨지는, 간혹 다시금 뒤적이게 되는 책들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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