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름 좀 진지하게 생각한 이야기

대중이 이해하고 움직인 적이 있는가?

 

위 사진은 1095년경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프랑스 클레르몽 대성당 앞에서 대중에게 설교하는 장면이다.
이때는 11월 말의 추운 날씨로 청중은 300-400명에 불과하여 예상치 기대에는 훨씬 못 미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투르와 루앙에서 주교회의를 열어 비슷한 내용을 호소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실행된 것이 최악의 가짜 뉴스에 근거한 최고의 사기극이라 일컫어지는,
1095년 이후 1400년대까지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대량 학살극이자 약탈전인 십자군 전쟁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교황은 십자가를 들고 추운 겨울날 열심히 뭔가를 외치고는 있는데,
복장이 그래서 그런지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그 흔한 마이크나 확성기도 없다.-아, 1095년이구나.-
그 고귀하신 교황을 직접 얼굴을 대하는 신민들의 설렘과 흥분을 감안해 보자.
당연히 그림에서 보이듯이 몇몇은 교황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고함을 지르기도 하였을게다.
수백 명이 모여있는 시장통에서 이래저래 자연스레 생기는 소음들과 합치면 어느 정도일지 상상해 보자. 
 
실내에서 열리는 주교회의에서는 다를까?
수십 명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마이크나 확성기도 없이 늙은 교황의 목소리가 과연 제대로 들렸을까?
혹시 교황이 젊었을 가능성은?
1035년 생이니 이때 나이 60이다. 더구나 2023년의 나이 60과는 비교할 수 없을게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 당시 우르바누스 2세가 연설한 내용이 오늘날 제대로 전해지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다.
총 5가지 종류인데, 현장에서 바로 기록된 것은 없고 모두가 몇 년이 지나 저술가의 기억에만 의존한다는 것이다.
 
과연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일까?
그 당시 녹음 시설이 있을리 만무하며 신문이나 방송도 없는 상태에서, 더구나 문맹률이 최소한 90%를 넘는 현실에서 
도대체 대중들은 그의 말을 얼마나 알아듣고 이해하였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멀고도 무모한 원정길에 오른 걸까?
다시금 가만히 따져보면 대중들은 그들 스스로가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알고는 있었을까? 
 

1917년 4월 3일(16일) 드디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역에 발을 디딘 레닌
그날을 전후하여 그는 엄청나게 많은 글들을 작성하여
일부는 혁명 이전에 팸플릿 형식으로 발표를 하고 일부는 혁명 이후에 책으로 발표를 한다.  
 
1917년 당시 러시아의 문맹률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료는 없다.
하지만 여타 자료들을 대충 정리해 보면 시골 농촌과 여성들에서 50% 이상의 문맹률을 기록한 모양이다.
하지만 단순 문맹률이 아니라 '문장 해독률-실질 문맹률'을 따져보면 그 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 자명하다.
더구나 공장지대가 밀집한 페테르스부르그나 군대 내에서만 그런대로 팸플릿등이 열람되었지,
여타 시골 농촌이나 빈민지역등에서 책이나 신문 팸플릿등은 구경하기 힘들었을 것이 당연해 보인다.
 
더구나 그 시기에 레닌의 글만 있었겠는가.
오늘날에도 제법 중요한 사건이 터지면 이리저리 별의별 내용들이 뉴스와 유튜브 등을 도배하듯이,
그 혁명의 시기에 봇물처럼 터지는 뉴스의 홍수에 어질어질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게다.
그리고 복잡한 정세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라는 것이 거의 대부분 내용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문장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러기에 한번 읽고 이해하기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금 100년이 지난 시점에 읽어봐도 이런저런 주장들이 헷갈리니 그 당시는 어떠했겠는가.
 
과연 그 인민 대중들은 나르도니키니 사회 혁명당이니 멘셰비키 그리고 볼셰비키 등의 그 수많은 정파들에 대해
그들의 노선의 차이점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라도 인지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리 목숨까지 바치면서 혁명에 모든 것을 걸었을까?
무지의 결과는 레닌 사후 스탈린의 집권으로 혁명은 본격적으로 똥칠갑을 하기에 이르게 되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던 러시아 혁명은 또 하나의 역사적 비극으로 긴 악몽의 터널로 진입하게 된다.  
 
흔히 '위대한 시민의 힘' '역사를 이끄는 민중의 잠재력'이니 하는 말들이 들리곤 한다.
과연 그 '힘'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 '광기'에 휩싸인 관념의 덩어리이거나 소위 지도자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환상에 불과한 것인가?
 
온갖 책이나 방송 그리고 미디어등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21세기의 오늘날.
이제는 미처 모르고 부화뇌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과연 그렇게 자신할 수 있을까?
아직도 여전히 말하지 않으면 공개되거나 논란이 일지 않으면 우리들은 결코 정확히 알 수 없다.
더구나 진실보다 더 무서운 '개소리(Bull Shit)'와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오늘날
우리들의 눈과 귀 그리고 머리통은 더욱 권력자들의 장난질에 무방비로 놓일 수밖에 없다.
 
수확한 콩을 나름 깨끗이 씻어 한 움큼씩 쥐어 맷돌에 간다.
오래간만에 별식으로 두부를 만들어 먹기 위해 무심하게 맷손을 잡고 맷돌을 돌리는 아낙의 손짓에
아무런 의미나 흔적도 없이 그냥 갈리어 부서져가는 낱낱의 콩들이 새삼스레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