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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좀 진지하게 생각한 이야기

트로츠키에게 독일 혁명은 얼마나 간절했을까?

물론 내가 역사를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란 주제를 가지고 고민을 할 때 나름 경계해야 할 것을 뽑는다면
'개인사(史) 위주의 시각'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해석은 자연스레 비극적이거나 영웅적인 인물에 대한 과도한 감정이입으로 인하여 
보다 냉정한 역사적 평가나 판단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흔히 하는 착각이나 잘못 쓰이는 개념 중의 하나가 '객관적 역사 해석'이라는 황당한 소리이다.
역사에서 객관적인 시각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역사적 가치나 의미등을 부여할 때는 해석하는 역사가의 주관적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역사에 대한 평가 및 해석은 오히려 더욱 계급적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이나 소수 집단 위주의 역사 해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역사의 격변 속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부서져야 했던, 잊힐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프랑스 중심가나 변두리 거리의 이름들에는 프랑스혁명과 연관된 인물들의 이름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라파예트, 당통등의 이름이 금방 떠오른다. 그리고 그 밖의 그리 유명하지 여러 인물들도 여럿이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는 로베스피에르의 이름은 중심가 어디에도 없다.
-혹자는 파리 뒷골목에 있었다고도 하는데..., 중심가에는 확실히 없다.-
고르바초프의 시절에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등 스탈린에게 억울하게 숙청당하여야 했던 이들이 모두 복권을 이루었지만,
레닌과 나란히 한 진정한 혁명의 정수 레온 트로츠키만은 끝끝내 복권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여전히 '혁명의 배신자'라는 억울한 누명 속에 멕시코 어디엔가 떠돌고 있다.
 
오래간만에 1930년대 초반 독일의 정치 정세에 대한 트로츠키의 '파시즘, 스탈린주의, 공동 전선'을 접했다.
역시 트로츠키의 글은 나름 재미가 있고 읽기가 쉽다.
이전의 러시아 혁명사 3부작, 배반당한 혁명 등 몇 권의 책이 그러하였고 이 책 역시 그러하다.
전후 주변 정세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예측들, 그리고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문장력등의 힘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을 이어가는 내내 몇몇 질문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과연 트로츠키에게 독일 혁명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그에게 독일 혁명이 왜 그리 간절하게 느껴지는 걸까?
튀르키예의 프린키포섬에서 1주일에 겨우 한번 오는 신문이나 편지등을 통해서만 얻는 정보에 그는 얼마나 미쳐버릴 심정이었을까?
 
물론 이 책에서의 요점은 히틀러의 파시즘에 대항해 스탈린의 정책-사회 파시즘론-을 폐기하고,
공산당과 사민당을 비롯한 모든 진보세력이 연합한 反 파시즘 공동 전선을 구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결국 1934년 제7차 코민테른에서 디미트로프의 '反파쇼 인민전선'으로 공식적 슬로건이 된다.
하지만 오늘날 나에게 그런 내용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과연 1929~1933년까지 급변하는 독일의 정세를 머나먼 튀르키예의 외딴섬에서 지켜보는 그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레닌과 트로츠키는 수차례 언급하였었다.
독일 같이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에서 연이은 혁명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러시아 혁명은 곧 무너질 것이라고.
즉 러시아 일국에서 만의 사회주의 혁명은 결코 불가능하다고.
그러기에 1930년대 트로츠키를 비롯한 소위 '좌익 반대파'가 소련 내에서 다시 '정세의 역전-곧 혁명-'을 이끌어 내기는 거의 불가능인 상태에서,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바로 이 독일 혁명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바로 그 독일이 히틀러의 파시즘-NAZI-과 스탈린을 비롯한 코민테른의 그릇된 정책에 의해,
공산당과 사민당을 비롯한 모든 진보 세력이 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그 강력했었던 사민당의 독일이 무너진다면, 이제 트로츠키는 어디에 기대를 건단 말인가? 
이미 이탈리아는 무솔리니의 세상이 되었고, 영국과 프랑스는 나름 안정적인 체제가 유지되고 있고...
스페인? 노르웨이? 스웨덴?
아무리 둘러봐도 1930년대 그가 꿈꾸었던, 아니 마르크스가 예견하였던 발전된 자본주의에서의 사회주의 혁명 가능성은
역시 '독일'뿐, 다른 대안은 찾을 수가 없다.
 
독일에서 그가 주장한 '反 파시즘 공동 전선'이 실현되어 혁명으로 나아간다면,
그는 당장 독일로 날아가 그의 냉철한 두뇌와 그 누구보다 풍부한 경험으로 독일 혁명을 지켜내며,
나아가 스탈린으로 인해 시체가 되어 버린 러시아 혁명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 믿지 않았을까?
그는 너무도 간절히 그날을 꿈꾸며, 1주일에 겨우 한번 오는 신문과 편지를 기다리기에 그는 더욱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지 않았을까?
-평소에도 그리 성격이 좋지는 않아 보였으니, 그 정도는 더 심해졌을게다.
어쩌면 그의 애달픈 심정을 지금의 내 수준에서 가늠해 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것이다.
 
프랑스혁명에서 지워버리려 하였던 장폴 마라와 로베스피에르
러시아 혁명에서 그리도 지워 버리고 '혁명의 배신자'의 낙인을 찍으려 하였던 트로츠키
그리고 2023년 이 정부에서 그리도 지우려 애쓰는 홍범도
 
역사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개인史 위주의 역사관'이라 여기지만,
한 개인의 운명과 고뇌등을 통해서 그 시대를 읽어가는 것도 나름의 의미와 묘미가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그 비극적 운명은 우리를 너무 힘들게 한다.
특히 10월 혁명 최고의 영웅이며 동시에 '마지막 볼셰비키'로 기억되는 트로츠키의 비극은 더욱더 애잔하게 느껴지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약해지지만, 특히 '정서적 정신적 맷집'이 유난히 더 약해지는 듯하다.
그러기에 나는 요즘 들어 더욱더 'Happy Ending'을 기대하는 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