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전 글들

엇갈리는 운명

1945년 8월 15일
- 프랑스의 한 법정에서는 14대 13의 배심원 판결로 필리페 페탱은 사형 판결을 받는다.
1945년 승전 두 달 이후
- 영국에서 치뤄진 총선에서 노동당에 패배한 보수당 윈스턴 처칠은 수상직에서 내려오게 된다.
물론 1951년 다시 수상에 오르기는 하지만.
너무도 극적으로 상반되는 두 사람의 운명.

1915년 당시 해군 장관이었던 처칠은 오스만 제국을 대상으로 과감한(?) 해상 작전을 펼친다.
바로 '갈리폴리 전투'로서, 세계 해전사에 영원히 남을 최악의 삽질 전투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후 정치적으로 처칠을 공격하려면 이 '갈리폴리'라는 단어만 언급하면 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 순간 처칠은 정신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 헛소리를 늘어 놓았다고 하니,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갈 것이다.
하기는 지금 다시 그 전투를 살펴봐도 너무 황당하여 입이 다물어 지지 않을 정도이니...

1차 세계대전 당시 최강의 육군이라 자랑하던 프랑스 군대는 단순히 군인의 숫자에서만 우위를 차지할 뿐,
화력이나 군 전투 장비에서는 형편없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죽을 때까지 공격하기'로 알려진 드 그랑메종 대령의 헛소리에 빠져있었던 지휘부는
당시 기관총이나 중포를 위한 예산도 모두 삭감해 버리는 미친 짓을 하였다.
그러기에 중포도 하나 없이 단지 가벼운 총검만을 가지고 - 무기가 무거우면 돌격에 지장이 되기에 -
오직 적의 진지를 기필코 점령하겠다는 강력한 '정복 의지'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 당시 독일의 전면적인 공격에 프랑스의 운명은 어떠하였을 지는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이 시기에 유일하게 전쟁에서 중화기를 비롯한 화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대로 된 군사의 휴식, 보급, 배치등을 조절하는 유일한 지휘자가 바로 페탱이었다.
그리하여 1916년 베르됭전투에서 위기에 처한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면서
일약 '프랑스의 영웅이며 구원자'로서 절대적 지지를 받게 된다.

1940년 히틀러의 전쟁 야욕에 놀아난 네빌 체임벌린이 사임하고 수상에 오른 처칠.
프랑스 침공 6주만에 마지노 선(線)을 무너뜨리며 승리를 구가한 강력한 독일군을 상대로
그 어떠한 시련이 있어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결사항전의 자세를 견지한 그는
결국 5년이라는 시간동안 영국 본토를 수호하면서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결국에는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역사의 영웅으로 남게된다.
 
1940년 8월부터 시작된 독일의 런던 대공습은 이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어찌 보면 히틀러의 목적은 영국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평화 협정만을 바라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서부 전선을 안정시킨 다음, 거대한 목표인 소련을 점령하는 것.
1년 넘는 기간동안 거의 매일 공중에서 퍼부어 대는 폭격기의 집중 폭격에
정치적으로 '평화 협정'이라는 허울 좋은 방패는 매우 강력한 유혹이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특유의 유창한 연설과 현장 지휘로 흔들리는 영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세우고,
우유부단한 자세를 보이는 미국을 전쟁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는 처칠의 노력과 헌신.
그것은 2002년 BBC가 영국인 1백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위대한 영국인 100명'가운데
뉴턴과 세익스피어를 제치고 윈스턴 처칠이 1위를 차지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독일의 프랑스 침공이 시작된 지 6주 만에
프랑스는 더 이상의 항전을 이어갈 수 없는 충격적인 패망을 눈앞에 두게 된다.
마지막으로 휴전파와 항전파가 논쟁을 하던 중 레이노 수상이 사임하고 페탱 원수가 수상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는 프랑스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 없기에 패배를 인정하고,
독일과의 휴전이라는 차악을 선택하는 무리수를 선택한다는 너무도 뻔한 이유를 들이댄다.
 
하지만 당시 84세로 그 시절 부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미 하루중 의식이 명료한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을 멍한 상태로 보낸다는 그에게
그런 막중한 임무를 맡긴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거나 용납되는 판단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오직 형식적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프랑스 정부'의 명맥을 유지하였다는 그 '비시 정부'
정신이 약간 나간 늙은 군인 출신의 지배자가 독일의 힘에 조정당하며 운영되는 정치 구조라...
당연히 그것은 극도의 파시스트 권력이 될 수밖에 없으며, 나치의 하수인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1945년 독일의 패망 이후 그의 운명은?
"...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백살이 다 되어 가는 한 노인에게 떠넘기는 것을 보니 정말 정나미가 떨어진다."
그의 재판에서 누군가 남긴 이 말이 가슴에 깊이 와닿지만
이미 뒤틀려 버린 그의 운명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에서 그 전체의 흐름을 알고자 함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제 넘쳐나는 자료들을 훑어보는 것 자체가 너무도 버거운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뜻언뜻 낯선 곳, 어떤 묘한 교차점에서 부딪히는 사건이나 인물들의 흐름을 더듬어 가다 보면
단지 역사로서만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 속으로 더욱 깊이 새겨지곤 한다.
페탱과 처칠의 묘하면서 거대한 인생의 굴곡처럼 말이다.
                                                                                        --- 2022.03.08

'예전 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일, 일본 그런데 한국은?  (0) 2024.01.25
바둑과 장기  (1) 2024.01.25
disinformation(허위조작정보)이란?  (3) 2024.01.25
'개의 해'에 늑대를 생각하며  (0) 2024.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