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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들

바둑과 장기

바둑과 장기는 아마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채,
아직도 그 다양한 묘수와 한 판의 전쟁같은 승패로 우리를 자극하곤 하는 가장 오래된 오락 거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바둑은 여전히 이런저런 다양한 형식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데 비하여,
장기는 왠지 고리타분한 늙은이들의 소일거리로 전락해 버리는 느낌이 있다.
TV 등을 봐도 그런 생각이 과히 틀린 것 같지는 않고...
어떤 차이점이 이렇게 간극을 넓히게 되었을까?

첫째가 바둑은 넓은 평원에서 마음대로 뻗어나가며 싸우고 지키는 전쟁의 양상인데 반하여
장기는 갇히고 제한된 공간 속에서 정해진 길로만 달려야 하는, 꽉 막힌 도시 내에서의 시가전의 느낌이다.
마치 나폴레옹 3세 치하에 오스만 남작에 의해 시작된 파리 도시 계획의 분위기라 할 수도 있다.
당시 시민들의 반란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파리를 방사선 모양의 일방통행으로 기획하여,
시위자들의 탈출로를 막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기 어렵게 하고 격파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즉 닫힌 공간 홈 패인 공간은 그만큼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상과 활동을 제한하기 마련이다.

둘째가 장기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한판의 전쟁을 치른다.
하지만 바둑은 두는 사람에 따라 100수 안에 끝날 수도 있고, 300수 이상까지 갈 수도 있다.
결코 그 자원의 끝을 정해두지 않는다.
마치 장기는 중세 시대의 전쟁터처럼 전군이 일렬로 대열을 짓고 맞상대로 싸우는 숫적 우위의 양상이라면,
바둑은 현대전처럼 보다 다양한 자원과 무기로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격을 하고 방어를 할지 알 수 없다.

셋째는 장기는 왕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리고 그 왕은 아무리 위험해도 궁을 벗어나지도 못하게 해 놨다.-그게 게임의 법칙이라니...
하지만 바둑에게는 왕은 없다. 그나마 굳이 있다면 수많은 전투 속에서 나름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대마가 있을 뿐이다.
대마불사라 하지만, 그 놈들도 죽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대부분 끝난다. 왕이 죽은 것처럼...
하지만 드물게 대마를 위기에 빠뜨리면서 주변의 영토를 야금야금 넓혀 나가다,
결정적일 때는 대마를 희생시키면서도 이기는 경우가 드물게 있기도 하다.
즉 장기에는 절대자가 존재하면서 모두가 그와 운명을 같이 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바둑에서는 세력을 모아 만들어진 강력한 중심 세력은 있지만, 그것이 절대적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넷째는 장기는 자신의 태생적 신분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가 없다.
졸은 영원히 졸이다. 결코 뒤로 후퇴도 안되고 그렇다고 앞으로 두 칸을 갈 수도 없다. 오로지 자기의 수준을 알고 그것에 복종하여야 한다.
포는 왜 하나만 뛰어넘어야 하는 건가? 차도 필요하면 대각선으로 갈 수도 있을 텐데, 왕도 위험하면 궁을 떠날 수도 있을 텐데...
포도 그러하여야 하고, 차도 그러하고, 하물며 절대적 존재인 왕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자신에게 낙인찍힌 그 이름을 그 신분을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바둑은 자신-물론 그것은 운용자이지만-의 의지에 따라 그 넓은 대지를 마음껏 누린다.
바둑판에서 일단 모든 돌은 평등하다. 어떤 선험적인 제약이 있을 수 없다. -- 자 마음 가는 데로, 능력껏...
일부는 그 힘을 모아 대마를 만들고, 일부는 선발대로 적들의 넓은 지역에 던져져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하고,
일부는 힘겹게 대마와 연결되어 살아남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근근히라도 독자적으로 살아서 제 영역을 만들기도 하고...
 
어쩌면 전근대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의 기준점들을 이 장기와 바둑에서 찾아본다.
-별것을 다 같다 붙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심심하니깐...
그리고 세상은 변화하면서 바둑은 여전히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장기는 변두리로 밀려난 것은 아닌지...
어차피 게임이나 오락이라는 것도 그 세태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가장 봉건적인 내용의 장기와 가장 자본주의적인 것 같은 바둑.

어쩌면 최근 유행하는 오락들도 미리 짜인 판속에서 움직이는 것보다는,
밑바닥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하나하나 도시를 국가를 만들어가는 그런 류가 인기를 끄는 것.
정체된 평형의 상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축적과 변화 그리고 투쟁(경쟁)을 통하여 더 강한 무기나 세력을 만들어 더 넓은 세상으로,
더 많은 땅과 더 많은 인구 그리고 더 많은 부를 창출해 나가는
그런 가장 자본주의적인 내용이 대세를 형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금 과한 비유이겠지만,
마치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는 헤겔의 말처럼 말이다.
 
                                                                                              ---  2018년 어느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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