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좋아한다.
'자토이치'나 '소나티네'가 그렇고, 주연만 맡은 '피와 뼈'도 그렇고.
그러기에 불꽃놀이를 의미하는 '하나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수입된 제1호 일본 영화라는 타이틀도 덧붙여야 하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제 2호가 '나라야마부시고(考)'였었구나.
강력계 형사인 주인공은 무기 소지범 검거를 위해 잠복근무를 하여야 했다.
하지만 부인이 암에 걸려 입원한 관계로 동료의 배려로 간호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는데,
그 사이 단짝 파트너는 총을 맞아 하반신 마비가 되어 버린다.
이후 그 범인을 검거하려는 와중에 부하 한 명은 사망하고, 한 명은 총상을 입게 된다.
분노에 치민 그는 범인을 사살하고, 이후 시체에 대고 남은 총알을 모두 퍼붓는다.
더구나 얼마전에 5살 정도 된 어린 아기는 죽어 버렸고,
부인의 병은 더욱 악화되어 이제는 호프리스로 병원에서도 손을 놓아버린 상태이다.
설상가상으로 백혈병 치료등으로 돈은 바닥이 나고 결국 형사로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지만 이자도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린다.
오래간만에 찾아간 하반신 마비된 동료는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를 하고.
-- 그 동료는 부상을 당하자 부인과 자식이 이혼을 하면서 떠나 버렸다고 하니...
모든 것이 막혀버린, 너무도 막막하기만 한 이 세상에 대해서 주인공은 결코 흥분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빠져들었던 것이 바로 이 점이 아닌가 싶다.
숱한 영화들이 표현하는 화자-주인공-의 분노 섞인 넋두리들이나 술주정들...
여기서는 그러한 잡스러운 것들이 없다.
주인공은 여전히 침묵한다.
그는 말하지 않는다. 단지 행(行)할 뿐이다.
그는 (조용히!) 중고 차량을 개조하여 은행을 턴다.
-물론 그 과정은 너무 어색하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하반신 마비가 온 동료에게는 재활의 모티브를 주기 위해 그림 도구를 선물한다.
범인을 잡다가 사망한 후배 미망인에게는 거금을 전달한 듯하다.(뭔가를 주는 데, 아마 돈이겠지...)
사채업자에게도 일단은 돈을 갚는다.
그리고 그는 부인과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아마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이라면 일본에서도 북해도 부근이지 않겠나 싶다.
후미에 그는 이런저런 분노로 사채업자 일당을 사살한다.
-- 그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행(行)할 뿐이다. 어쩌면 자토이치에서도 그러하였구나 싶기도 하다.--
결국 마지막 후배 형사들이 검거하러 온 시점.
그는 조용히 아내와 바닷가를 바라보면서 카메라는 그들을 떠나 바닷가의 어린 소녀를 비춘다.
그리고 울리는 두발의 총소리.
왠지 음악이 좋다고 느꼈더니, 아~ 역시 '히사이시 조'였구나.
영화는 분명히 폭력적인 내용과 사건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너무도 정적인 느낌을 안겨주는 듯하다.
더구나 장기가 찢어지고 터지거나 총과 칼이 난무하는 그런 잔인한 폭력 장면은 없지만
말이 없고 감정도 별로 없어 보이는 정적인 분위기 속에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폭력들이
오히려 더욱 날 것 그대로를 표현하는 강렬함을 안겨주지 않았는가 싶다.
이제 어느덧 거의 30년이 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다시 접하면서 새로이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세계를 음미할 수 있는 수작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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