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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등의 후기

'4 3 2 1' - 폴 오스터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고, 모든 게 다를 수 있었다.'
 
1900년 민스크를 탈출하여 미국에 도착한 한 유대인 젊은이는 이민국 직원에게 가명을 쓸려다 잊어버리는 바람에
이디시어로 'fragessen(잊어버리다)'라 말하게 되고,
그래서 그는 'Ferguson(퍼거슨)'이란 성으로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1947년에 태어난 그의 한 손자의 인생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그렇게...
즉,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고, 모든 게 다를 수 있었다.
 
재미있는 특이한 책의 구성이다.
4권짜리 책에 딸려온 '가이드 북'을 슬쩍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아마 더욱 헤매었을게다.
1-1로 시작한 인생의 흐름 --> 2-1로 --> 3-1 ... --> 7-1
1-2로 시작한 인생의 흐름 --> 2-2
1-3으로 시작한 인생의 흐름 --> 2-3으로 --> 3-3 ... --> 6-3
1-4로 시작한 인생의 흐름 --> 2-4로 --> 3-4 ... --> 7-4
 
1-2의 인생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14살의 나이로 갑작스런 사고사를 당한다.
아니 그 이후에는?
당연히 모든 것이 끝난다. 오직 빈 공간만 존재할 뿐이다.
1-3의 인생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6-3에서 20살의 나이에 교통사고사를 당한다.
그 이후는? 당연히 빈 공간뿐이다.
마지막에 언급되지만 1-1의 인생도 7-1인 20대 중반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1-4의 인생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이 소설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끝을 맺는다. 
아마 뭔 소리인지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4권이나 되는 짧지 않은 소설을 따라가며 읽는 동안에도 계속 헷갈리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래서 읽는 도중에 앞부분을 여러 차례 훑어 보기를 반복하게 된다.
 
이제까지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는 작품은 몇몇 보았었다.
소설로는 '핑거 포스트 1663' '그날 밤의 거짓말' '칼에 지다', 아~ 영화 아가씨의 원작이었던 '핑거스미스'도 있었구나.
그리고 영화로는 개인적으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뽑는 '라쇼몽'등이 있다.
하지만 이 책처럼 하나의 인생에서 벌어질 수 있는 4가지 길을 따로따로 추적해 가는 낯선 전개 방식은
비록 삭아드는 내 머리의 한계 속에 복잡하게 얽히기는 하였지만,
그 낯설음과 신선함으로 끝까지 궁금증을 유발하여 책을 놓을 수 없게 하지 않았나 싶다.
특히 7-4에서의 마지막은 마치 '모옌'의 '인생은 고달파'의 마지막 장면이 약간 연상되는 듯한?
 
문학과 글쓰기를 좋아하여 20대에 몇 권의 책을 출간하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주인공.
그의 어린 시절에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술, 담배, 여자, 친구, 동성애(양성애를 비롯하여)-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기에
뭐 그리 특별한 내용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은근히 하나의 의문이 머리를 맴돈다.
 
'만약 그때 내가 이렇게 하지 않고 저렇게 했더라면 지금쯤 어찌 되어 있을까?' 
 
물론 결코 알 수 없는 길이다.
이렇게 가든, 저렇게 가든, 요렇게 가든. 아니 뒤집어서 가든
그것이 어디로 뻗어 나갈지 어디서 갑자기 끝을 보게 될지 결코 알 수 없는
더구나 그 무엇에도 결코 만족할 수 없는 '불만족의 유전자'와 싸우면서 나아가야 하는 힘든 여정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