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20세기 전쟁사에서 인류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준 전쟁으로
사람들은 스페인 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언급하곤 한다.
베트남 전쟁은 우리나라가 직접 참전하기도 하면서 영화 등등을 통해 너무도 많이 언급되어 익숙하지만,
거기에 비하면 스페인 전쟁은 너무도 먼 나라의 일처럼 우리에게는 낯설게 다가오는 듯하다.
그러기에 스페인 전쟁은 우리에게 그 역사로서 구체화되어 인식되기보다는,
위대한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한 장으로 더욱 깊이 새겨지지 않는가 싶다.
바로 한 마을에서 군부 세력과 나치의 폭격에 의해 자행된 무자비한 학살을 주제로 한 '게르니카'.
그리고 1937년의 그 게르니카의 비극은 수십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두고,
스페인 북쪽 끝에서 대륙을 가로지르는 수 천 킬로미터의 지리적 간극을 가지며,
'1980년 광주'라는 한반도 남도의 한 도시와 묘한 지점에서 접속을 한다.
1936년 선거에 의해 합법적으로 성립된 공화 정부를 반대하여
모로코에서 촉발된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군부 쿠데타 세력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무한정의 군사 지원 속에
노동자와 시민을 중심으로 한 공화파에 대하여 무자비한 대공세를 펼치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당시 군비 확충에 혈안이 된 독일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새로 개발한 무기와 그를 이용한 다양한 전술의 시험장으로 스페인을 마음껏 유린하게 된다.
그중의 하나로 그들은 민간인이 거주하는 도시에 대한 집중된 폭격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예비 연습의 일환으로
1937년 바스크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게르니카에 당시 수준으로는 상상이 어려운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였다.
이 공습은 이후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런던 대공습과 연합군의 드레스덴 대폭격의 시조격이 된다.
프랑코 권력의 무자비함과 잔인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이 폭격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분노와 격분을 불러일으키고 프랑코 군부 세력의 무도함을 성토하게 하였으며,
이 사건을 접한 피카소는 그 분노를 작품 '게르니카'에 고스란히 각인시켰던 것이다.
그러기에 당시 가까스로 생존한 많은 바스크인들과 도시가 여전히 불타는 것을 목격한 외국 특파원의 생생한 증언 속에
프랑코 군부 쿠데타 세력의 반(反) 인간적 잔인성은 어떠한 변명이나 핑계도 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만 믿는다면 그건 아마 당신이 너무 순진하다고 스스로를 위로(?) 해 줘야만 할 것이다.
이후 게르니카에 대한 더 깊은 분노의 원인은 단순한 학살의 정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프랑코 군부 세력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 성직자들은 모두 이 폭격을 철저히 부정하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프랑코 군부 측은 게르니카를 불 지르고 초토화한 것은 바로 바스크인들과 퇴각하는 공화파 군대였다는 주장을 근 40년 동안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 성직자들은 그들이 가장 잘하는 짓으로 호응을 하였고.
- 몇 번 헛소리를 하고, 이후에는 바로 긴 침묵을 지키는 것.
더구나 프랑코의 하수인이자 충실한 개를 자처하였던 뉴욕 타임스 기자인 윌리엄 P. 카니는
'도시 파괴의 주원인은 화재와 다이너 마이트이며, 폭격의 흔적은 없다.'는 기사를 내보내기까지 하였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극우의 어마어마한 강점 하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정상적인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들은 별 부담 없이 행하는 것이 있다.
즉 모든 객관적인 확증적 사실 관계들을 무시하고, 황당하고 얼토당토않은 억지 주장을
그들이 가진 언론 및 출판 그리고 정상모리배들을 동원하여 너무도 뻔뻔스럽게 지속적으로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면서 어느덧 '그게 진실인가?'라는 의문이 스며들게 하며,
더욱 시간이 지나면 그 주장이 어느듯 역사적 사실의 일부이기나 한 것처럼 인식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년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복잡한 머리통을 붙잡고 이렇게 한탄하게 만든다.
'역사에서 (객관적) 진실이란 없는 것이다. 오직 (주관적인) 해석만이 존재할 뿐'
그나마 한때는 지만원 같은 일부 극소수 반(半) 미치광이들의 헛소리로만 그치나 싶었던
'80년 광주'에 관한 온갖 흑색 비방 선전들이
종편방송이 생기면서 TV 조선과 채널A 등의 공중파 방송의 힘을 빌리며 목소리가 커지는 듯하더니
2024년 오늘날에는 공공연히 국가 기관의 수장들의 주둥이에서 이런 개소리들이 흘러나오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차마 이 자리에 그 쓰레기들과 내용들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나의 정신 건강을 해치고 싶지는 않다.
당연히 친일 유신 잔당을 자처하는 현 여당 쓰레기들이 빠지지는 않는다.
더구나 몇 년 전의 JTBC의 드라마 '설강화'에서 처럼
수십 년이 지나 약간 흐릿해지려는 기억 속으로 '자본과 권력'의 힘이 밀려 들어오는 순간
역사는 그 본질을 잃고 온갖 흙탕물로 지저분해지기 시작하기 쉽다.
언제나 '역사적 진실'이란 미천한 존재는 그리 힘이 없는 나약하고 초라하기에 말이다.
이렇게 혼탁한 시간과 공간 속에 온갖 구정물로 더럽혀지는 듯하던 '1937년의 게르니카'와 '1980년의 광주'는
2024년 스톡홀름에서 전해온 낭보 하나를 통해 다시금 역사적 조우를 하게 되며,
여기에 나아가 '1944년의 아테네'와 '1948년의 제주'의 조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다시금 최소한 수십년은 버틸 새로운 힘을 가지게 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구석구석에서 쓰레기들의 썩은 내는 진동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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