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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쓸데없는 이야기

금장대와 연(鳶)

사진이 영 어리바리하다.
밤에 폰카메라로 찍으니, 그것도 몇 년 된 낡은 폰 카메라라 더 그런가?

근무를 마치고 산책을 나간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제법 걸었었기에 오늘은 금장대를 다시 가 보기로 한다.
가을 저녁 바람이 제법 차다.
어쩌면 늦가을의 형산강 강바람이기에 더욱 차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이다.
걷기에 좋은 거리일 수도 있으나, 볼만한 경치가 거의 없는 밋밋한 길이기에 그리 권할 만하지는 않다.
그래도 차량 수단이 없는 나로서는 일단 여기라도 한 번씩 걸어 다닐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덧 1시간이 지나 금장대에 다다랐다.
지난번에 왔을 때와 별반 다른 느낌을 가질 수는 없다.- 하기는 며칠 되지도 않았으니...
이런저런 둘레의 데크길을 걷다가, 오늘은 경대교- 이제는 동대교 -로 천천히 넘어가면서 금장대를 다시금 돌아본다.

아마도 1987년 3월 2일쯤, 아니면 그 주 중일 게다.
대학생이라고 등교하는 첫날인데, 아직 책을 받지는 못하였기에 맨손으로 터벅터벅 경대교를 걸어서 넘어갔다.
- '아~ 이런 게 대학생인가?' 약간 의아해했던 그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3월 초 경주 석장의 똥바람이 아마 그때도 세차게 불었을게다.
가만히 다리를 걸어가다 문득 저곳이 눈에 들어왔다.-그때는 저 건물이 없이 그냥 자그마한 둔덕이었다.
지나고 나니 그 둔덕의 바로 밑 물길이 약간 휘돌아 가는 곳이 '애기청소'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김동리 소설 '무녀도'의 배경이라고도 하였다.
애기와 청년과 소가 빠져 죽었다는 곳이라는데, 약간 애매하다.
'소(沼)'는 물길이 굽이쳐 흐르면서 만든 작고 깊은 웅덩이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소(牛)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각 마을의 이름과 전설을 일일이 따져 말이 되니 마니 하는 미친놈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
'언젠가 졸업 전에 저곳에서 연(鳶)을 날리리라'

이런저런 긴 세월 동안 간혹 드물게 머리에 떠오르기는 하였지만, 잊고 지냈었다.
그리고 어느덧 졸업이 다가온 시간 즈음.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제법 추웠으니, 아마 KMA를 치고 나서 쉬는 기간이었을 게다.
전날 마신 술로 머리가 찌뿌둥한 아침.-누구와 마신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아마 규황이겠지, 뻔할 게다.-
눈을 뜨고 담배 한 대 피운 후,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동대 사거리에 지금은 없어진 가게에서
한지 대나무(?)와 풀등을 사고, 슈퍼에 들러서는 막걸리 몇 통을 사들고서 학교로 향했다.
가는 길에 후배 몇몇에게 'jatroi 편집실'로 모이라고 연락을 해 놓고.

황당해하는 후배들에게 사연을 이야기하고 연을 만들기 시작했다.-아마 5~6명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다들 버벅거리고 있는데 김낙희라는 후배가 그나마 연을 제대로 만들 줄 알았던 것 같다.
--걔가 아마 상주 출신이 아니었나 싶은데... 연락이 안 되니 물어볼 수도 없고...
이래 저래 만든 연을 들고, 다른 옆구리에는 막걸리와 안주를 챙겨 그 둔덕으로 갔다.
둔덕 끝에는 맑은 날씨에 제법 차가우면서 세찬 바람이 불어 연을 날리기에는 적당하였던 것 같다.
결국 다른 연은 다 실패하였지만, 그래도 김낙희가 만든 연 이나마 제대로 날아가 주어 얼마나 고마워하였는지.
마치고 내려와 술 한잔 더하고 헤어진 그날.

20살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던 그 길,
무심히 저 둔덕을 바라보던, 그리고 스스로에게 한 작은 약속,
연을 날리고서야 비로소 그리 다사다난했던 내 대학 생활이 끝났다는 걸 실감했던 그날.
그 경대교-동대교-를 3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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