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일어나지 않은 것은 다행인데,
대신 평소보다 일찍 떠진 눈이 더 이상 감기 지를 않아 뒤척이다가 그냥 일어난다.
'에이~ 지내다가 졸리면 다시 자지 뭐...'
우유에 콘플레이크를 섞어 한 그릇하고, 커피에 초코과자를 먹고 약을 먹는다.
폰으로 확인하니 강우량이 10mm를 넘었다고 하니,
그리 적은 비는 아니다 싶어 창문을 열고 잠시 나가 본다.
아직 여명에 분명히 보이지는 않아 나가서 직접 맞아보니
그리 굵지도 않지만 그리 가늘지도 않은, 겨울 치고는 제법 비다운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작년 봄과 여름 남부 지방이 가뭄에 허득일 때 대전을 비롯한 중부 지방은 제법 비가 내렸었는데,
겨울이 지나가면서 다행히 지난 일요일과 함께 오늘도 제법 되는 양의 비가 내릴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겨진다.
살아가는 이 땅이 마음에 들던 그렇지 않던, 그래도 자연은 조화로운 균형을 맞춰 주려는 것에 대해 항상 고맙게 여긴다.
살다 보니, 웬만하면 부족한 것보다는 그래도 약간 넘치는 것이 나은 것 같다.
뒤주의 쌀도 가득 차야 마음이 편하고, 개울의 물줄기도 넘실거려야 맛이 있고, 술독의 술도 가득 차야 더 풍미가 있는 듯하지 않는가?
어느덧 낯설어 버린 이곳 경주에서 지낸 지도 이제 3개월을 지나고 4개월을 접어들고 있다.
처음 내가 예상했던 것들과는 여러 부분에서 어긋나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대체로는 하나하나씩 적응해 가고 맞춰져 가고 있지 않은가 싶다.
어차피 이 세상을 나에게 맞출 수는 없는 것이고 내가 맞춰가야 하지 않겠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 홀로 살 용기가 없다면 말이다. 그리고 나는 없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힘들지만,
동시에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어렵게 느껴지기는 매한가지가 아니겠는가.
만약-그런 일은 당연히 없어야 하겠지만- 최악의 상황이라면 4년을 더 이러한 나라에서 살아야 하기도 하지 않는가?
뭐 그보다 더 지랄 같은 상황도 없을 테니, 무엇인들 못 참겠는가?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여전히 더 굵지도 더 가늘지도 않게 자기의 힘과 리듬을 가지고 말이다.
요즘 들어 유독 등산화가 흰 운동화로 변한다고 느꼈는데, 그러고 보니 산이 너무 말라 있었나 보다.
밟히는 흙들 속에 뽀얀 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막 2월 중순으로 들어가려는 시기이기에 벌써 봄비를 운운하기는 거시기하다.
하지만 며칠전부터 겨울의 한추위는 지난 듯한 분위기에 슬며시 봄의 냄새는 솔솔 풍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만 더 지내면 봄이 오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고.
좀 더 많은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지난겨울 너무도 말라버린 이 세상에 비라도 채워줬으면
아침 카톡을 보니 고헌산 주위 산내에는 폭설이 내려 눈이 15cm 정도 쌓였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다.
내일 형과 약속된 산행은 어떻게 하나?
내일이면 웬만한 눈은 다 녹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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