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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쓸데없는 이야기

역시 일본이야...

10여 년 전의 사소한 기억이 하나 있다.
당시 근무하던 병원의 소위 문전 약국이 바뀌는 일이 있었다.
그 약사들은 병원 외래와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 명목이었는지 회식을 하자고 하였다.
두 차례에 나누어했는데, 그게 좀 애매하였다.
외래 조무사들과는 삼겹살로 하고, 진료 의사들과는 소고기로 하였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달리 보면 치사하게 먹는 걸로 차별을 하는가?라는 느낌도 들 만하지 않았나 싶다. 
 
마키아밸리는 군주에게 단단하게 충고를 한다.
신민(臣民)들이 열을 요구하면 겨우 힘들게 한 두 가지만 해결해줘야 한다고.
만약 요구하는 대로 들어주려고 하면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고, 그러면 왕의 권위가 무너질 것이라 경고한다.

하나를 들어주면 둘을 요구하고, 도저히 만족을 모르고 'more and more'를 갈구하는 '불만족의 mechanism'

요구를 들어 주고는 싶은데, 현재가 너무 힘들기에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변명으로 무시하라고 한다.
이것은 국내 정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국제 정치에도 여전히 관통하는 진리가 아닌가 싶다.
아니, 어찌보면 남녀상열지사에도 해당하는 것 같으니 그냥 보편적 인간의 특성 중의 하나라 하여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초 거대 강국이 되었기에 상상이 불가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때 미국도 식민지였던 때가 있었다.
1754년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영국과 프랑스 간의 식민지 전쟁에서, 미국은 당연히 적극적으로 영국을 지원하여 싸웠다. 
하지만 영국이 승리한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프랑스의 위협이 사라지자 영국은 더욱 강력히 식민지를 통제하기 시작하였고, 전쟁 비용과 식민지 통치 비용을 모두 식민지에 청구해 세금 부담을 가중시키게 된 것이다.
결국은 참지 못한 미국이 전쟁을 통하여 독립을 하게 되지만, 그 당시 그들이 느낀 배신감과 분노가 어떠하였는지를 상상해 본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고는 있지만 참 어려운 게 있다.
'강자에게 약해지고 약자에게 강해지는' 약간-아니 엄청나게?- 야비해 보이는 습성 말이다.
'Homo Homini Lupus -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다.'
여기서 '늑대'라는 어감이 평화적 이성적 도덕적 존재로서 와닿는 이가 있을까?
물론 개인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이런 개념이 무너지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집단적 차원에서, 특히 경제적 이권이 달렸거나 국가적 범위로 확장되면 쉽게 단정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싶다.
여기서는 개인적 의지나 단순한 도덕적 개념에 의해서만 설명 가능한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정치적 경제적 사활을 걸고 싸우는 기업의 경영이나 국가의 정치 외교가 그리 어렵지 않겠는가?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 자기 분수도 모른 채 되지도 않은 대의명분만 쫓다가 망한 좋은 예이지만,
'양공' 스스로는 결국 그 처절한 패배를 통해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배우지를 못하였었다.
2023년 대한민국의 대일 외교에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었단 말인가?
아~ 이것 하나는 제대로 알고 지나가야 할 텐데.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자신들이 던진 한 표의 의미가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 것인지, 그 한 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뭐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했으니, 그냥 쓰레기처럼 버린다 한들 또는 지금이 최선이라 생각한들 뭐라 할 것인가?
결국은 그냥 그렇게 또 지나가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아직도 일본에 대해 악을 쓰는 나라는 이 나라 밖에 없다.'는 정확한 표현에 놀랍다.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핵심을 찔렀는지, 몇 마디의 단어로 그 긴 오욕의 역사를 정리해 내는 능력에 감탄이 나올 뿐이다.
그 글을 쓴 사람의 지위나 과거를 논해서 뭐 하겠느냐? 
여기는 '자유' 국가이지 않은가?
지도자가 바라는 국익에 부합하는 내용이라면 '자유'롭게 떠들어도 '자유'로운 나라이니 말이다.
단, 지도자가 바라지 않는 말을 '자유'라는 미명하에 함부로 떠들었을 때는 당연히 무한대의 책임을 각오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 '자유'로운 국가에서 살아가는 '자유'로운 국민의 기본이며 의무이지 않겠는가?
 
간혹 뉴스 등에서 이번 한일 협정에 대하여 분노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별일 없을 게다. 다시 조용해질 게다.
2~3 일만 지나면 언론은 다시금 아파트 주택 문제, 미국 금리 인상 등이나 허황된 대장동이나 검찰 압수 수색-어딘지는 모른다. 아무 데나 하면 기레기들이 알아서 기사를 만들어 줄 것이니- 소식등으로 장식을 할 것이다.
조중동은 다시금 그들의 오욕의 역사를 지우기 위해서라도 '미래지향적'인 이번 협정에 찬사를 반복할 테고,
기타 방송들도 며칠 지나 약간의 겁박을 받으면서 조용해질 것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시민들은 그런 줄 알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지 않겠는가?
 
시민들과 위안부 여성들의 항의? 뭐 저렇게 몇 번 떠들다 조용해지겠지.
몇십 년을 그들을 위해 싸워온 양심적인 인물에 대해서 그리도 난도질을 해댄 그들이 아니던가.
아니, 그러면 국민의 힘이니 하는 이들이 노력해 줄 것이라 진정 기대를 하였단 말인가?
그리고 어차피 기레기들은 그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은 기사화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 심한 욕 들어 먹을 소리를 하고 싶지만, 차마 여기 적지를 못하겠다.
 
역시 일본이 대국(大國)이긴 한 것 같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國益을 생각하며 일체의 흔들림 없이 단결하여 여유롭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나 민족이나 모든 것을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는 한국의 우익(?)들만 바라보다,
꿋꿋한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한 듯, 한결같이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 일본의 우익을 쳐다보니
'역시 세계대전을 벌일 만한 민족이었구나'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 욕 들어 먹기 딱 좋은 개소리라 여겨지지만, 지금은 그렇다.
 
일본이 외교부 각국 대사관등을 통해 그리도 노력하였으나 오히려 반발과 관심만을 더 유도하였었던 '소녀상'
거의 30년을 이어 오면서 일본을 괴롭혔던 '수요 집회'
몇 년전부터 국민의 힘과 조중동의 미친듯한 도움으로 일본은 손 하나 대지 않고 코를 푼 격이 아닌가?
이제 치욕스러운 소녀상을 치우자, 이제 부끄러운 집회도 그만하자.
미래 지향적 위대한 발걸음인 새로운 '한일 협정'이 이루어진 이 시점에 
불편한 것은 치워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이 땅의 위대한 언론과 검사들 그리고 시민과 위안부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그들이 원하는 데로 다~
꼴리는 대로 다~
이루어지게 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