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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좀 진지하게 생각한 이야기

좀비와 궐위기(interregnum)

누구나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와 상황이 가장 힘들게 여겨진다.
부산 수영에서 군 생활한 이에게 전국에서 가장 추운 곳을 묻는다면 어김없이 '수영'을 첫 손에 꼽을 것이고,
강원도 인제에서 군 생활한 이에게 전국에서 가장 더운 곳을 꼽으라면 당연히 '인제'를 첫 손에 꼽을 것이다.
자신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이며 상황이었기에 그렇게 기억되는 것이 당연할 게다.   
다른 이가 아니라고 우기면 뭐 하겠느냐, 본인이 그렇다는데 더 할 말이 있겠는가.
 
공자는 '춘추 시대'를 가장 타락한 시대라 한탄하며, 항상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의 시기를 이상향으로 꿈꿨었다.
왜? 별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그가 살았던 그 시대가 바로 '춘추시대'였을 뿐이었다.
그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난 '전국시대'는 과연 '춘추시대' 보다 조금이라도 더 도덕적이었을까? 
그러기에 소위 '명저(名著)'라고 하여 당 시대를 비판하고 새로운 이상향을 꿈꾸었던 많은 책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표현 중의 하나가,
'극심한 혼란과 위기의 오늘날은 대변혁의 전환점으로써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또는 기억될 것이다)'
문제는 그 '대변혁의 전환점'이 너무너무 많았고, 지금도 많다는 것이다.
세상이 돌고 돌아도 너무 많이 돌아서, 이제는 정말 사람들이 돌아버릴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도 내가 살아가는 바로 이 시대가 '대전환점'의 하나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불과 5~6년 전, 
너무 긴장하여서인지 헤어롤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서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을 읽어 나갈 때,
이제야 한반도의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가 한 꺼풀 벗겨지는 것인가라는 감상에 젖기도 하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었다.   
한 꺼풀은 벗겼을 지 모르나, 그 껍질이 결코 한꺼풀 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론적으로 최고 중심부에서부터 썩어 부패하여 몰락한 낡은 권력은,
언젠가 살아나기는 하더라도 좀 더 시간이 훨씬 지난 이후, 좀 더 다른 모습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도대체 지금 이 '괴물'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최근 한국 영상 매체의 주류는 갑자기 등장한 '좀비(zombie)'들로 채워지고 있다.
좀비라? 살아있는 시체. 
분명 죽은 것은 확실하나, 그렇다고 완전히 죽지는 않은,
움직이긴 움직이나 분명하게 살아있다고 말할수는 없는,
생명의 기본인 어떠한 재생산도 불가능하며 정상적인 활동도 불가능한 존재 아닌 존재.
 
문득 키르기스스탄 작가인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라는 소설에서 묘사된
만쿠르트(노예)에 얽힌 슬픈 전설이 연상된다.
하지만 이 좀비에게는 그와 같은 눈물겨운 아름다운 이야기나, '도넨바이'를 노래하는 새의 울음소리도 없다. 
그 본질이 시체라서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아 쉽게 지치고, 부패된 잇몸 때문에 제대로 물지도 못하는 존재.
단지 흉측한 외모로 '위협'만을 유일한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는 존재.
 
낡은 것은 소멸하고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 간극(interregnum)
그 궐위의 시간에는 수많은 병적인 징후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프랑스에서는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이 땅에서는 오늘날의 검찰 권력이라는 해괴한 좀비같은 모습으로.
그러기에 난세는 영웅을 낳기도 하지만, 동시에 간웅(奸雄)이 나타나기도 하지 않는가.
물론 그 폐해는 고스란히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눈물로서 대신하겠지만 말이다.
 
지난 1년의 시간,
뭣 때문인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갖가지 핑계로 전국을 뒤 쑤시고 돌아다닌다.
온갖 협박을 일삼으며, 오직 조작과 억지 그리고 영장이라는 각목 쪼가리를 휘두르며 말이다.
처음에는 진짜 뭔가가 있나? 하고 관심을 끄는 듯도 보였지만, 
지금의 이 시간에는 모두가, 설치고 돌아다니는 이들이나 지켜보는 이들이나, 대부분 무덤덤할 뿐이다.
쉽게 말해서 흥행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 본질이 '쉽게 지치고, 제대로 물지도 못하기에 오직 흉측한 외모로 위협'만이 가능한 존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빨리, 누군가에게는 제법 버틴 듯한 느낌으로 
이제 그 한계에 와닿지 않은가 싶은 느낌이 든다.
 
인생의 세상의 역사의 정치의 변곡점은 딱히 무엇이라 정해진 것은 없다.
언제 어디서 그 무엇이 어떻게 증폭되고 폭발되어 퍼져 나갈지, 숨통을 끊어 놓을지 결코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작금에 벌어지는 흐름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엄청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고 꿈도 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