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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다녀온 이야기

경주 벚꽃 구경

매화가 피면 '이제 삭풍 한겨울은 지났구나'라고 느낀다.

길거리나 언덕배기에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면 '아, 이제 봄이 오긴 오는구나'라고 느낄 게다.

그러다 벚꽃이 피면 '아, 마침내 봄이 깊어졌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지난 금요일 버스를 타고 가는 길가에 벚꽃이 만발하였기에,

오늘은 근무를 마치고 낡은 카메라를 들고 '김유신묘' 근처를 갔다.

버스를 타고 경주병원 근처에 내려서 천천히 걸어간다.

역시 해가 많이 길어졌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이기에 '역시 월요일이라 사람이 없구나...'라는 착각을 하였었다.

'김유신묘'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한때는 이곳의 진위여부가 잠시 논란이 되기도 하였으나, 한국 사학(史學)의 한계성인지 그냥 흐지부지 지나가 버렸다. 

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언제일까?

대부분이 만개(滿開)하였을 때를 떠올릴 터이고, 대부분이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벚꽃은, 활짝 피었을 때도 예쁘기는 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질 때가 아닌가 싶다.

때가 되면 한꺼번에 화려한 꽃을 피웠다가, 조금의 주저거림도 없이 한순간에 사그라져 버리는 그 장엄함. 

개인적 기억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벚꽃이 학생시절 저녁에 바로 이 김유신묘에서 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헤드라이트 불빛을 따라 그 주위로 바람에 벚꽃 잎이 흩날리며 떨어지던 그 광경과 그 기억.

하지만 오늘은 걸어왔으며, 또한 벚꽃이 아직은 약간 덜 익은 듯하기에 언감생심이라 여길 뿐이다.

세상에 '타이밍'을 딱 맞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익히 수차례 절감하였기에, 이제는 그리 아쉽지도 않다.

막연하게 또다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해는 이미 져 버리고, 벚꽃은 이제 막 시작하는 듯한 분위기에 약간 허전하고 씁쓸한 기분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청난 착각이었다.

다시 큰길로 내려서니...

월요일 저녁? 길거리는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벚꽃은 완전 만개(滿開)였다. 송이송이가 마치 터져 버릴 듯할 정도로 말이다.

지난 주말이 어쨌을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이고, 이번 주말 난리는 어쩔는지 걱정 아닌 걱정이 일 정도이다.

연인들, 가족들, 애기들 그리고 차들.

당연히 끝을 모르게 따라붙은 포장마차의 행렬과 시끄러운 음악 소리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빈약하지만 사진만으로도 알 수 있을게다.

목요일 저녁에 다시 나가봐야 하나?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워하는 벚꽃의 장관은 이번 주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저 많은 꽃잎이 하루 이틀 만에 장엄하게 사그라져가는 그 장관, 그리고 그 '꽃잎비'를 맞으며 거닌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 같다.

'혹시나'를 기대하며 다음 주 월요일쯤 다시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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