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란 감각을 통해서 주어지고 감각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면서 감각에 의해 모사 촬영 반영되는 객관적 실재를 표현하기 위한 철학적 범주'
누구에게는 약간 익숙한 문장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마치 말장난같이 여겨질 수도 있을게다.
뭐 원래 철학이란 것이 그런 게 아니겠는가?
간단히 말하면,
물질이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감각을 통해 인식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객관적으로 분명히 존재하기에 정확하게 제대로 인식한다는 것들이 과연
첫째 실제로 객관적으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둘째 우리는 그것을 진짜 있는 그대로 제대로 인식하느냐? 는 것이다.
즉, 다시 정리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인식)하는 것들이 과연 진짜인가?
소크라테스의 스승(?)이기도 하였던 아낙사고라스는
재판에서 겨우 사형을 면하고 거금의 벌금을 물고 추방령을 당한다.
그의 주장은 태양은 신이 아니라 그냥 불타는 금속 덩어리라는 것이다.
태양의 신적 의미를 그리고 그들의 수호신인 아폴론을 부정하는 그런 주장은
그 시대의 가장 심각한 불경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뭐 고대 사회는 그럴 수 있지?
지구가 우주를 돈다는 간단한 진리가 받아들여진 것이 아직 500년이 채 되지 않으며,
아직도 지구는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불과 200년 전에 처음 언급된 서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콩(Kong) 산맥'의 환상은
1928년 옥스퍼드 사전에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였었다.
물론 2세기 프톨로마이오스가 언급한 이후 1900년대까지 언급되었던 '달의 산맥'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항해 시대, 황금의 섬으로 불렸던 그 많은 섬들은 지금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물론 섬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 희망을 걸고 전 재산을 털어 넣었던 사람들의 인생도 그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하지만, 위성 통신 이동 수단이 획기적으로 발달한 오늘날에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과연 그럴까?
오늘날은 옛날처럼 남의 집 담을 몰래 뛰어넘는 도둑들은 확실히 거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도둑이 예전보다 많이 감소하였거나 거의 없다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까?
오늘날 이 땅에서 벌어지는 부동산 사기, 금융 사기, 주가 조작, 결혼 사기 등등을 보자면,
그들은 여전히 이 땅의 구석구석 위-아래를 구분하지 않고 횡행하고 있다.
그 숫자나 규모 등이 더 커졌으면 커졌고, 더 사악하다면 더 사악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게다.
오히려 나쁜 놈들도 '진화'해 나가며 스스로를 가능한 숨기면서 점점 더 우리를 헷갈리게 할 뿐이다.
미국의 데니스 호프는 1980년 달이 본인 소유라는 소송을 걸어 샌프란시스코 법정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현재 3만 원에 1200평의 땅을 판매하고 있다.
누가 사겠느냐? 전세계약 600만 명의 사람이 이 땅을 구입했다고 한다.
로널드 레이건, 지미 카터, 톰 크루즈, 장우혁, 장나라 등등 - 이 땅을 구입한 사람들이다.
비트 코인등의 소위 '새로운 가상 화폐'는 또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화폐의 신기원이 될까? 아니면 거대한 사기극이 될까?
ㅎㅎㅎ, 웃음만 나올 뿐이다. 워낙 내가 모르니...
첫 주제로 다시 돌아오자면,
우리가 진실이라고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과연 진짜로 믿을 만한 것들인가?
'세계사 전체에서 몇 개 나열된 사건을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건 없지 않은가'라며 짜증을 낼 수도 있을게다.
과연 그렇게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들일까?
10여 년 동안 전국토를 피바다 불바다로 만들었던 베트남 전쟁의 계기였던 '통킹만 사건'이 완전한 조작이라는 것.
이라크 전체와 중동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이라크 전쟁의 원인이었던 '대량 살상 무기'는 완전한 허구였다는 것.
사건의 수는 일부분일지 모르나, 그 거짓말은 여전히 역사와 사람들에게 깊이 파인 상처로 남아있다.
굳이 더 예를 들어야만 하겠는가?
이 땅의 조작된 정치사와 법의 역사를 뒤적여야 하는 정신적 고통을 지금 또 겪고 싶지는 않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쉽게 존재하는 것처럼 믿게 되는 것인가?
힘겹고 지겨운 일상의 삶에 지쳐 버린 우리들의 감각 이성 판단력이 그만큼 무뎌져 버린 반증이 되는 것인가?
보다 중요해 보이는 사안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하려는 그 어떠한 의식적 노력도 이제는 힘들고 귀찮기에,
마치 옆에서 전문가처럼 떠들어 대는 소위 '기레기들의 장단'에 맞춰 박수를 치는 것으로 만족해 버리는 것은 아닌지.
더구나 '돈'이 걸린 경우라면 은근히 '혹시 아나?'라는 생각으로,
이번이 인생 역전의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기대를 하는 소시민적 욕망도 무시하지는 못할 게다.
그러기에 나처럼 '로또'를 사는 이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 아, 로또는 존재하기는 분명 존재한다. 단지 확률이 지극히 낮을 뿐이지만..., 그래도 -
과연 눈에 보이는 것만 그러한가?
우리가 믿는 것들 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의 덩어리에 얽매여,
실재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을 실재하는 것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역시 빠질 수 없는 것이 종교적 세계일 것이다.
어떠한 이성적 판단이나 논리로도 접근할 수 없는 그 고유의 특성으로
모든 이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버렸으며, 나아가 개인의 정치 경적 사회적 가치의 기준으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기에 흔히 진보 세력이 주장하는 '민중의 힘'이란 것도 또한 그렇지 않은가 싶다.
프랑스혁명, 러시아 혁명, 아랍의 봄, 그리고 이 땅의 촛불 투쟁(혁명은 아니지 않은가)등
역사의 극히 짧은 순간에 표출되는 그 폭발적이고 광적인 힘에 매료되어
인류의 미래를 열어 나갈 참된 주축 세력이라 열성을 다 받쳐 찬송하는 그 '민중의 힘'이란 것이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식인의 희망과 환상이 조합하여 만들어낸 또 하나의 허상은 아닌가?
실제 존재하는 것은 단지 가득 찬 불만에 분노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어찌할 줄 모르고 무리 지어 움직이는 거대한 '군중'일 뿐이다.
그들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스스로의 미래의 희망을 걸고 싶은 욕망이 바로 '노동자의 혁명성'이니 '민중의 힘'이라 표현되는 것은 아닌지?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땅에서 그 어떤 노동자에게서 그 낡은 혁명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어쩌면 18세기 19세기에도 그 혁명성은 단지 지식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한 것이 아닌지.
존재하는 것은 그냥 삶에 찌들고 지친 '군중의 흐름'이었고,
그것이 그 역사적 정치적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표출되었을 뿐이었는지 않은가?
때로는 역사적 진보의 길로, 때로는 反역사적 퇴보의 길로 말이다.
물론 우리가 무미 건조하게 모든 상상을 지우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그런 잔인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거짓말이나 헛된 상상력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보다 더 큰 즐거움과 삶의 여유로움을 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선에서 그칠 줄 알아야 할 것이며, 그 너머의 길에서는 이성이라는 말라비틀어진 오래된 지인에게 조언을 구해야 할 것이다.
즐거움과 여유로움이 영원히 지속되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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