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초창기의 거목을 이야기한다면 소크라테스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는 과연 진짜 소크라테스가 맞는 것일까?
뭔 소리인가?
먼저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나 글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플라톤의 책을 통해서일 뿐이다.
'변론', '크리톤'등의 책을 통해 우리는 Elenchus로 알려진 그의 대화법이나 사상에 대하여 추론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기 전 최후의 밤의 이야기를 적은 '크리톤'.
문제는 소크라테스를 찾아간 일군의 사람들 중에 플라톤은 끼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는 그 중요한 자리에 빠져 있었을까?
28살이라는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이기에 그런 자리에 낄 군번이 안되었거나,
아테네 시민들에게 유죄 판결을 받아 사형을 당하는 이와 친하게 지낸 것을 드러 내기가 불편하였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마지막 자리에는 분명 빠져 있었다.
그러기에 소크라테스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크리톤 등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정리하였다고 하는데,
사형을 당할 것인지 아니면 탈옥을 할 것인지를 정하는 그 긴박한 시간에 이루어진 대화들,
이제 죽음을 각오하고 독배를 드는 그 시간에 스스로를 돌아보며 이루어진 대화들.
물론 평범한 우리와는 현격한 수준 차이를 보이겠지만,
개인적으로 늙은이들의 그 뛰어난 기억력에 찬탄을 보낼 뿐이다.
500명의 배심원이 자리에서 스스로를 변론을 한다.
1차 표결은 280명의 유죄 선고에 이어 형량을 결정하는 2차 재판에서는 360명이 사형에 찬성하였다.
법정이 실내였는지 실외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마 구경꾼들도 좀 제법 있었을게다.
당연히 그리 조용하지는 않았을게다.
웅성웅성거리지 않았을까?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말이다.
아, BC 399년의 그 시절에 마이크 시설은 분명 없었다.
- 1917년 러시아 혁명 시절 최고의 연설가였다는 트로츠키도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떠들었다고 한다.-
플라톤은 그 재판의 변론 과정을 수년이 지나 책으로 정리를 하였다.
역시 길이 역사에 남는 플라톤의 뛰어난 청력과 기억력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갖는 무게가 궁금하여 그에 관한 책을 다시 뒤적인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서도 책을 덮지 않고 이어가는 이유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든 아니면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린 플라톤의 생각이든 뭐가 중요하겠는가.
단지 BC 400년을 전후한 사람들의 철학적 사고를 그냥 더듬어 보고 싶을 뿐이다.
어차피 또 시간이 지나면 누가 누군지 헷갈릴게 분명할 테니,
그 정도는 그냥 대충 넘어가는 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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