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지역을 대표하는 유명한 음식들이 있다.
때로는 그 지역에서만 선호하지만 그리 알려지지 않은, 그 속성상 유명해질 수 없는 음식도 있다.
하기는 음식이라 이름 붙이기에도 초라한, 그냥 그저 그런 '반찬'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추석을 앞둔 일요일이라는 빡씬 근무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 저녁을 먹는다.
명절 선물로 들어온 스팸 하나를 굽고, 막걸리 한 통을 딴다.
한 달에 며칠 정도 자는 숙소이기에 반찬이라는 것이 뭐 뻔할 수밖에 없다.
김치하고 콩잎파리 무침만 꺼낸다.
어딘지 큼큼하고 짭쪼름하기만 한 콩잎파리로 밥과 스팸 쪼가리를 감싸고 한입 가득 집어넣는다.
갑자기 목이 메고 뭔가가 울컥거린다.
며칠 전 추석을 앞두고 김해 엄마한테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번에 내가 김치 쪼금 담그고, 콩잎파리 좀 담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목소리가 올라간다.
"뭐라 하지 마라,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다. 올해가 마지막일 게다."
"알았다, 누가 뭐라 하나..."
올해 89, 이제 내년이면 90이다.
비록 10여 년 전에 혼자가 되셨지만, 다행히 고맙게도 아직은 그리 큰 병치례 없이 건강하시다.
간혹 치매가 걱정된다고 하시면서도
80년 전 계모가 한 모진 말들이나 가슴을 찢는 사연들,
60여 년 전 쥐뿔도 없이 찢어지게 가난한 주제에 그리 야박하게 굴었다는 시댁 식구들에 얽힌 이야기들은
마치 어제 방금 겪은 일처럼 장광설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문득 무슨 소리가 들리는 데?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싱크대의 수돗물은 계속 흐르고 있다.
'아, 안 들리시는구나...'
콩잎파리 무침을 집에 가져갔지만 역시 마누라와 딸은 냄새조차 싫어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맛이 아쉬워 어제 문경 오는 길에 가져왔다. 왠지 막걸리와 잘 어울릴 것 같기에...
전라도가 탁한 막걸리와 큼큼한 홍어라면, 경상도는 막거리에 콩잎파리?? ㅎㅎㅎ
계획(?)대로 일을 마치고 저녁에 숙소에 들어와 햇반을 데우고 스팸을 굽고 반찬을 꺼낸다.
두 세 젓가락으로 막걸리 한잔을 비워가면서, '역시 이 맛이야...'라고 느끼는 순간.
'올해가 마지막일 게다...'라던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이 큼큼하면서 짭조름하면서 이상하게 중독되게 끔 만드는 이 콩잎파리의 특유한 맛과 향기.
그 맛에 목이 매이고 그 향에 목이 터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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