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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쓸데없는 이야기

'일상'이 그냥 일상이 아니다.

1917년 10월26일(당시 러시아 율력상) -- 러시아 페테르스부르그에도 아침이 밝아 온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 전철을 타려고 준비하고,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열고, 극장과 영화관등은 그 날의 공연을 준비하고...'

10월 24일이후로 이틀동안 벌어진 지독한 내전의 와중에 동궁이 폭격을 받고 케렌스키는 도망가고 그리고 임시정부는 붕괴되고, 간간히 시가전은 벌어지고 있고,

전국에서 모인 소비에트는 예전의 체이가를 부정하고 새로운 소비에트를 만들고...

무엇보다 페테르스부르그 근방 30km 위치까지, 케렌스키 코르닐로프 지지 세력과 코사크 부대, 야만부대등이 곧 침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을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모든것이 마치 남의 일인 듯 습관처럼 치루고 있다.

 

그렇게 러시아 혁명은 이루어졌다.

역사서에서 벌어지는 그 과정은 정말 숨가쁘다는 말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4일동안 잠을 한 숨도 자지못한 크릴렌코의 피를 토하는 연설도, 그 당시는 그리 감동적이지 못하다.

왜냐? 누구나 그리 하였기에. 특히 그가 볼셰비키 당원이라면 더욱 더.

더구나 그 이후의 전개는 그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격렬하였기에

 

그런데도 그 당시를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에게는, 약간의 색다름을 느끼기는 하였지만,

어제와 오늘이 그리 다르지 않기에, 그냥 그런 하루들의 연속일 뿐이었을지 모른다.

뽀 문학이 문학의 한 장르로 자리 잡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을 생생하게 전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낯 설 수도 있는 먼 과거의 사건을 마치 며칠 전의 일처럼 생생하게 그 현장감이나 감정을 재현해 주니 말이다.

 

그런데 다시금 돌이켜 보면, 그 일상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다는 것이다.

냥 출근하고 전철을 운전하고 상점을 열고 극장과 영화 상영을 준비하였던 그들은 그 모든 소용돌이가 조만간 진정될 것이라고,

자신 스스로는 또 다른 일상에 메몰된 채 그렇고 그렇게 살아가게 될 줄만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몇 달 후 그들은 그 후폭풍을 고스란히 맞게 된다.

행(幸)인지 불행(不幸)인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각자의 삶의 스펙트럼에서 보다 다양하였겠지만

그 흐름을 벗어난, 그 폭풍우를 아무 일 없듯이 피해간 이들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1922년 이후, 러시아 혁명은 모두의 지배적인 예상을 벗어나 결코 패배하지 않고 자기를 지켜낸다.

하지만 곧 그 정수(精髓)는 쓰러진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쓰러져 간다.

그리고 역사에서 이해되기 어려운 또 하나의 비극적 시나리오도 아무도 모르게 굴러가게 된다.

천재적인 두뇌와 감각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추진력과 행동으로 혁명을 이끌고 지켜냈던  트로츠키.

아무것도 없는 러시아에서 열차 하나에 몸을 싣고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과 국방장관을 겸임하면서, 

그 짧은 시기에 '붉은 군대'를 만들고 발전시켜 결정적인 순간에 온몸으로 혁명을 지켜냈던 바로 그 트로츠키가 

그 우둔하고 이기적이고 편협한 스탈린에게 쫓겨나 저 멀리 알마티로 터키로 노르웨이로 멕시코로...

 

혁명의 정수들은 쓰러지고 밀려나고 쫓겨나고 그리고 치가운 시신으로 버려지게 되고,

변두리에서 어슬렁 거리던 찌꺼기들은 권력을 독차지하면서 위대한 그 혁명에 똥칠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당연히 그 당시의 일상에 매몰되었던 사람들이 뒤집어 쓰게 되고...

그들이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말이다.

 

하루 하루를 가지고 역사를 논하지는 않는다. 분명 그것은 일상이다.

하지만 무심하게 지나간 그 하루 하루의 일상들 속에 우리들의 삶이 우리들의 역사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같아 보이는 일상. 그 속에서도 작은 변화들은 존재한다.

'뭐, 그게 별 일이겠냐?' '그 정도는 지나가야지.' '그럴수도 있겠지' '사소한데 집착하지 마라'

자기는 마치 무슨 대단한 대인배인 것 처럼...

하지만 쌓이고 쌓인 일들이 한꺼번에 폭발하고 나면 그제서야 허둥댄다.   

'... 아니, 어찌 이런 일이..., 도대체 어디서 부터...'

 

우리가 무심히 지나는 어제와 오늘의 하루 하루들.

그 일상이 그냥 일상이 아닌 것이다.

어느 날 돌아보면 그 하나 하나가 모두 기억되어야 할 것들이고,

그 무엇인가의  단서이고, 그 무엇인가의 본 모습이고 그리고 그 무엇인가의 자그마한 상징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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