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시험 기간만 되면 다른 모든 책들이나 잡지들이 유난히 재미가 있고 집중이 잘 되고 이해도 잘 되었던 것 같다.
단 시험 과목만은 제외하고.
하지만 시험이 끝나면 다시 다 재미가 없다. 그래서 술을 마시러 갔다.
나이 50 중반을 넘어가는 이 시점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경제학 서적을 한권 읽으려는데,
그 중간에 그리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란의 금서인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올빼미'가 그럭저럭 다 읽혔으니 말이다.
바로 그 경제학 서적 한 권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유명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다.
갑자기 책을? 그것도 생소한 경제학을? 그것도 약간 빨갱이 책 같은 것을? 더구나 약간 철이 지나지 않았나?
이 책을 소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겪은 고통을 남들도 겪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ㅎㅎㅎ...
물론 약간은 참기 힘든 고통이지만,
경제학 서적 중에서는 그 나마 생각보다는 무난히 넘길 수 있는 정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제는 책 한권으로 사상을 바꾸니 마니 할 정도의 수준과 나이는 지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셋째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대해서 많은 도표를 통해 보다 현실감 있고 평이한 설명으로 이어간다고 여겨지고.
책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가 여럿있지만 그중에서도 철학과 경제학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지만 철학은 어차피 결론이 없는 것이기에 포기하기가 보다 쉽게(?) 여겨지지만,
경제학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내 능력의 문제인 것 처럼 여겨지기도 하기에 더 어렵게 와닿는지 모르겠다.
전문의 시험치고 군대 가기 직전 대학로 서점에서 마르크스의 '자본' 5권-그것도 양장으로 된-을 사들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인터넷 판매나 배송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내만 몰랐나?-이었다.
군대에 가서 남는 시간에 새로이 뭔가 제대로 공부를 하고 정리를 하겠다는 옹골찬 다짐을 다졌었는데,
말 그대로 다짐만 실컷 다지고 다졌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몇 권의 경제학 서적을 접하였지만, 대부분 좋은 기억을 가지지는 못하였었다.
- 물론 주식이나 부동산 등의 투자에 관계된 서적은 없었다.
뭐가 있어야 투자를 고민 해 보는 거지, 송곳 하나 꽂을 내 땅도 없는 주제에 언감생심일 뿐이었으니...-
지나고 나서 보니 맑스의 글은 원래가 매우 어려운 글이라 여겨진다.
맑스가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글이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상대적으로 엥겔스가 저 평가되는 것은 그의 글이 비교적 무난하게 잘 읽히기 때문은 아닌가?
마르크스의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을 처음 읽고 나서 - 도대체 내가 뭘 읽은 거지?
몇 년 후 두 번째 읽고 나서 - 와~ 정말 대단한 글이구나, 그런데 이해가 잘 안 되네...
몇 년 후 3번째 읽는 데, 이런~~ 여전히 이해가 안 되어 그냥 중간에 포기해 버렸다.-욕 나올 뻔했다.
-- '그래, 다들 잘 났어 잘 났어...'--
피케티의 21세기의 자본은 간단한 수학 공식 두 가지만 가지고 책 한 권을 다 풀어간다.
수학? 아니 산수라고 하여도 무방하다.
'α=r x β ' 'β=s/g' 굳이 하나 덧 붙인다면 'r-g>0 or <0 or =0' 정도?-각각의 의미는 책 속에 있으니-
결론도 아주 분명하다.
자본주의는 부가 불균등하게 배분된다. - 그러면 언제는 균등하게 분배되었는가?-
문제는 그 불균등이 1910년대까지 아주 심했다가, 공황과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좀 낮아졌다가, 80년대 이후 다시 심해지는 추세라는 설명이다.
또 하나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는 말이 맞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향후는 19세기 이전처럼 다시 '세습 자본주의-상속 자본주의-'가 위력을 떨칠 것이라 예상한다.
그리고 그 해결 방안으로는 '누진적 세금'을 거둬야 하는데, 그게 빠져나갈 방법이 많아서 참 어렵고 복잡하다는 설명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한 것 같지 않은가?
그 엄청난 자료와 도표를 가지고서 말이다.
그러기에 쉽지는 않지만, 또 그렇다고 그리 어렵지 만은 않은 지적 여행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때로는 이 책에 대하여 감정적 동물적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게다.
당연히 책을 읽고 판단이나 사고의 오류라 여겨지는 부분이나 다른 관점의 차이로 인한 비판은 당연한 과정이다.
하지만 '자본' '불균등 분배' '누진적 세금'등의 단어에 식겁(食怯)을 하는 이가 있다면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리고 통계의 오류에 대해서 가타부타하는 이들이 간혹 있는데, 따로 언급할 가치가 없지 않나 싶을 뿐이다.
아, 피케티는 당연히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본인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리고 본인은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그래, 그게 많이 어렵지. 왠지 친밀감이??-
그러기에는 너무 귀족적으로 자란 것 같고, 연구 방법 등이 너무 미국적 자본주의적인 것 같으니 말이다.
이 책은 어쩌면 도표만 들여다봐도 책 한 권을 다 읽었다고 하여도 무방할지 모르겠다.
해부학이나 수술등을 글로 만 설명해 놓으면 엄청 복잡해 보이지만,
그림 등으로 보면 비교적 쉽게 이해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위 도표는 '상위 10%'라 그 나마 무난해 보이지만,
'1% Vs 9%', '0.1% Vs 0.9%' 비교에 들어가면 더욱 황당해지기도 한다.
특히 밑의 도표를 보면 조상이나 부모를 탓하면서, 향후 자식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하지만 열심히 일 하기는 너~무 너무 싫고...-
어쩌면 이 책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이야기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또는 기타 문제로 간과하거나 왜곡될 뻔 한 그 '상식들'을, 수많은 역사적 자료와 통계를 통하여 재확인하고,
나아가 21세기 자본주의의 미래를 위한 나름의 방안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드보드에 700 페이지를 넘는 두께에 약간 당황하거나 버겁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노니 장독 깬다'는 기분으로 찬찬히 도표 중심으로 읽어가다 보면 꽤 괜찮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남는 게 시간이고, 가다가 정히 힘들면 약간 주저거리다가 그만 내리면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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