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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등의 후기

50 중반에 다시 접한 '레닌'

평생 하나의 목표를 위한 지난한 싸움을 이어 왔건만,
점점 나이는 들어가고, 돌아보니 이루어 놓은 것은 없어 보이고,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도 멀어져만 가는 듯하고...
1917년 1월, 어느덧 47의 나이라...
지금으로서는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지만, 100년 전만 하여도 어느새 노년에 접어든다고 할 나이.
그는 망명 중이던 취리히의 '민중의 집'에서 행한 한 강연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우리 구세대는 도래할 이 혁명의 결정적 전투를 보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50 중반에 다시 찾아보는 레닌의 글들.
물론 그가 그토록 많은 글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새로운 역사를 향한 도전과 투쟁들.
그 내용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 의해 새로이 되새겨지고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이제 이런 문장들이 더 눈에 띄고 더욱 가슴에 깊이 새겨진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제국주의 전쟁을 사회주를 위한 내전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치열하게 싸웠지만
전세는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빠져버리고, 몇몇 남아 있었던 동지들도 점점 부르주아 진영으로 넘어가 버리는 상황.
특히 카우츠키를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의 투항(?)은 그에게 결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지 모른다.
항상 냉철하면서 강철 같은 강인한 모습으로 비치는 그였지만,
어쩌면 늦은 밤이면 한 번씩 부인 크룹스카야에게 자신의 좌절의 심정을 토로하지 않았을까?
'과연 이 길이 맞기는 한 것일까? 우리는 이렇게 낯선 곳에서 그냥 이렇게 끝나 버리는 건 아니겠지?'

역사에서 혁명은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져 나온다.
1917년 2월 식량 배급 개선을 외치는 여성들의 시위가 시작되었을 때,
그 어느 누구도 이 시위가 짜르를 무너뜨리고 이 세상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는 도화선이 되리라 고는 예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짜르가 단 8일 만에 무너지고 부르주아 임시 정부가 수립되는 그 과정을 보고
그 냉철한 레닌 마저도 '기적'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사용하며,
말 그대로 급변하는 혁명 정세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겨우 신문 기사 몇 줄에 의존하여야 하는 상황에
'이 빌어먹을 먼 곳에서...'라는 표현으로 그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그 외진 취리히에서 얼마나 초조하게 혁명을 준비하며 기다려 왔는가를,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느끼는 그의 절박함이 내 가슴에도 새겨지는 듯하다.

선입견을 가져서 그런지, 혁명 전과 혁명 후의 글에서 느껴지는 힘이 분명 다르다.
1914년 세계대전 -레닌의 표현으로는 제국주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전쟁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내전으로'라는 슬로건을 제기하였을 당시
누구는 '미쳤다', 누구는 '우스꽝스러운 몽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그것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는 독일 제국과 러시아 임시 정부 와의 협의를 통하여 무사 귀국을 보장받은 후
베른에서 취리히로 이어 독일을 지나 스톡홀름과 핀란드를 지나 드디어 혁명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 역에 도착하였다.
4월 9일 출발하여 4월 16일 도착하였으니,
이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혁명의 시기에 7일은 너무도 긴 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때 그는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감히 내가 언급할 수준은 아닐 것이라 뭐라 말을 못 하겠다.
환영식에 이어서 그가 전격적으로 발표한 '4월 테제'는
'역시 격이 다르구나!'라는 감탄이 터져 나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모두가 당장 성취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흥분해 있는 상황에서 즉각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 이 구호 역시 초기에는 미친 헛소리로 비치기도 하였지만...-

이 숨 가쁜 역사에서 또 하나 결코 이해되지 않는 그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격변의 시절에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를 어떻게든 제대로 정리했었더라면...
그는 왜 그리 그 무능한 스탈린에 대하여 냉철한 판단을 못하였던 것인지? 도대체 스탈린의 어떤 면이 그리 강하게 그를 끌어당겼던 것인지?
물론 그 참혹하고 지독하였던 짜르의 전면적인 탄압 속에서,
그리고 멘셰비키들을 비롯한 내부의 적들과의 치열한 사상 투쟁 속에서
올바른 혁명의 대의를 지키며 볼셰비키 조직을 성장시켜 나가야 했던 그 고난의 여정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크룹스카야 역시 마지막까지 트로츠키 보다는 자신에게 악담을 퍼부었던 스탈린에 더 마음을 기울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글이나 논리로서 이해되거나 설명되는 것들이 아니라,
그리도 치열하게 목숨을 걸고 그 시대를 싸워 나갔던 그들만이 가지는 고유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등에 대하여 개개인의 능력등을 넘어서는 '동지'로서의 깊은 연대 의식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그 위대한 혁명에 똥칠을 해버리는 비극을 초래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버렸으니...

나이가 들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젊은 날의 그때와는 다르다고 느껴진다.
예전 트로츠키에 대한 아이작 도이처의 3부작을 읽을 때도 이와 약간 비슷하였다고 해야 하나?
이제 와서 1917년을 전후한 그 당시 정치 역관계나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 군사적 제 문제들
그리고 정세 판단이나 슬로건 등의 옳고 그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방천지가 꽉 막혀 버린 듯한 그 답답한 상황에서도 기필코 올바른 길을 찾아 나가려는 그들의 힘겨움들.
무엇보다 갈수록 더욱 답은 없고 막막해져 만 가는 듯한 혁명에 대한 전망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런 저러한 기로에 내몰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막다른 선택들.
이러한 모진 극한 상황에서도 그들를 지탱해 주었던 그 신념 등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역사를 읽는다기 보다는 그 속에서 싸워갔던 '사람'들을 읽으려고 하는,
그리고 그들이 흘러가고 얽히고 부딪히고, 그러면서 만들어지는 그 '흐름' -인간의 '생태학?'-에 더욱 마음이 끌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50대 중반에 다시 만나는 레닌, 아니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누군가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였다.
'24시간 하루종일 오직 혁명 하나만을 생각하는 사람, 그가 바로 레닌이다.'
아마 이 문장이 그를 잘 설명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그가 자주 인용했었던 당통의 문구 하나를 더 덧붙이고 싶다.
'과감하라, 과감하라, 그리고 더욱더 과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