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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쓸데없는 이야기

좋아서 하는 것

경주에 내려온 지 이제 3달째가 지나가고 있다.
숙소라고는 병원 안의 빈 병실 하나를 개조(?)하여 진료실을 겸해서 사용한다.
5인실이었다고 하니 작지는 않은, 오히려 짐에 비해서는 제법 넓은 편이다.-그래서 더 춥게 느껴지는가?-
책상과 책장 하나, 침대와 옷장 비슷한 것 하나, 냉장고 TV 컴퓨터 그뿐이다.
학생 시절 자취방도 가능한 단출함-지저분함이 더 기억에 남지만-을 지향하였었는데, 여기도 그러하다.

주말에는 대부분 집에 올라가지만 간혹 숙소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평일이야 당연히 {(24시간 X 4일) + 10시간 정도}는 꼬박 병원에서 지낸다.
- 금요일 저녁에는 집으로 올라가기도 하니... -
긴 긴 무료한 시간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노인 병원의 특성상 오전 회진 외에는 그리 바쁜 날이 드물다.
그리고 저녁에는 2~3시간의 운동(산책) 외에는 갈 데도 없고 찾는 이도 없으니, 그냥 혼자서 그렇게 보낸다.

'244,800/14 + 116,370/6 +162,810/9'
이틀 전을 포함하여 근 3달 동안 주문한 책 값과 권수이다.
마지막 9권은 오늘 도착 예정이다.
다시 읽거나 찾아보기 위해 집에서 가져온 것 10권 정도를 포함하면...
- 약간의 과장을 더 하면 2달 정도의 경주 생활을 책과 산책으로만 일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
물론 그 중에 사람도 만나고, 등산도 하고 그러했지만.

예전 한참 종주 산행을 할 때는 등산화에 대해서 그리 고민 같은 게 없었다.
그냥 캠프라인 2개 정도를 번갈아 신고 다니다, 닳으면 새로 하나 더 구매하면 그뿐이었다.
- 1년에 1~2 켤레 정도, 나는 다들 그 정도는 닳는 줄 알았다.-
최근 예전보다 산도 잘 못 가고 못 다니면서부터 갑자기 등산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즉 사고 싶은 신발들이 생겼다는 것인데, 이상하게 결정적으로 지르지를 못한다.
인터넷 등에서 여러 가지 상품들을 비교해 보고, 나름 나에게 필요한 제품을 정하기는 하였는데 말이다.
아니 왜 그럴까?, 기 백만 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하나를 사면 수년을 쓸 것인데도
이리저리 계속 재기만 하고 있으니, 스스로도 이해가 잘 안 된다.

의사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면서 굳이 장점을 대라면 두 가지를 꼽곤 한다.
첫째가 자식이 부모 직업란에 뭐라 쓰기 좋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 십만 원의 한도에서는 그리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내 같은 가난한 월급쟁이에게 기 백만 원은 당연히 무리가 되고 고민이 생기지만, 그래도 기 십만 원 까지는...
수년 전 '친일 인명사전'이 출판되었을 때, 나는 당연히 우리가 사야 된다 싶어 주문을 하였었다.
그 책 출판 후원금으로 군대 시절 거금(?) 10만 원을 냈었지만, 다시 30만 원을 결제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고, 그래도 그 정도는 그리 깊은 고민을 하지는 않았었다.
-- 물론 거의 하나도 읽지는 않았다.
오늘 경주에 내려와서 책을 신청하는 경우에도 결제에 대해서는 주저거림 등은 거의 없다.
간혹 실망스러운 내용의 책일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뭐 그럴 수가 있는 것 아닌가 싶을 뿐이다. 책이니깐...

무언가를 얼마만큼 좋아하는가를 측정하기는 참 애매하다.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것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뻥이나 치는 인간이 최고로 인정될 테니 말이다.
자본주의적인 속물적 기준으로 '자기 능력 수준에서 얼마만큼 기꺼이 투자(?)하느냐?'를 생각해 본다.
-- 너무 유치한 면도 있어 보이지만, 대충...
역시 아직 나는 '등산-트레킹-'이라는 것이 내 삶에서 '책'에 만큼은 이르지를 못하였구나.
물론 지금도 멀쩡하게 신고 다니는 등산화가 3켤레가 있다.
하지만 하나는 새것이고, 두 개는 밑창갈이를 한 것이다.
더구나 등산화는 그 종류가 유치한 패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마치 여름옷, 겨울 옷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욕망'을 더 키워서 빠른 시일 안에 저질러야겠다.
이번 여름 스웨덴은 일정상 취소되었지만, 대신 알프스가 기다리니 말이다.
- 혹시 몸이 부실해지면서 욕망도 조금은 사그라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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