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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쓸데없는 이야기

좁아지고 날카로워만 지는구나.

따뜻한 남쪽 나라라 기대했지만, 여전히 거센 석장 똥 바람에 체감 온도는 더 떨어진다.
북극 한파로 곳곳에 역대 최저 기온을 기록하면서 더욱 몸과 마음이 움츠려 든다.
저녁에 운동이라도 나가려고 하면 차가운 삭풍이 스며들까 저어되어 제법 두툼하게 챙겨 입고 나가야 한다.
아~ 이전까지 새벽 운동은 나가봤지만 야간 산행은 거의 하지 않았었구나.
이제까지 내가 겪은 겨울 밤바람은 주로 술 마시고 시내를 헤맬 때가 대부분이라
올해 '맨 정신'에 저녁 운동을 나가는 길이 더욱 춥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겨울바람이 유독 차고 날카롭게 옷 사이를 파고드는 듯 하니 말이다.
아니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추위에 더욱 취약해지는 것도 한 요인이라 할 수 있을까?

어떤 명확한 기준을 잡을 수는 없다.
그냥 막연한 느낌으로 그렇게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가 되곤 한다.
'오래된 인연'과 '새로운 인연' - 바람피우는 내용은 아니니 별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20년 정도를 어림 잡아 본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처음 사회에 나온 것이 28살의 나이이니, 대충 그때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인연이라 하여 연락을 하고 근황을 묻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과연 나만 그럴까?
아마 아닐 게다. 90% 이상이 나와 비슷할 게다.
왜 극소수인 몇몇만 남고 나머지는 다 떠나 버리거나 지워져 버렸을까?

사람이 사람과 오랜 세월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는 것.
어찌 보면 간단하고 쉬워 보이지만, 어찌 보면 가장 어렵고 힘든 과정이 아닌가 싶어 진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말이다.
누구나 처음 마주하였을 때는 당연히 서로가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는 너무도 낯선 순간들.
그 속에서 펼쳐지고 이어지는 그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오해와 마찰들, 갈등과 긴장들
때로는 희극적이고 때로는 비극적이기도 하였던 다양한 삶의 여정들.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0년 30년 40년을 같이 한다는 것.

나의 기대? 바램? 하나가 무참히 깨지는 것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가면 젊은 시절보다는 좀 더 속이 깊어지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려니 기대했는데,
50 중반의 나이에 벌써 깊은 좌절을 느끼고, 이제는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마치 한겨울의 삭풍처럼 감정의 흐름이 더욱 차갑게 조여들고 날카로워만 지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래된 인연'과 '새로운 인연'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차이는 유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어쩌면 더 이상의 '새로운 인연'은 내 인생에서 없어지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긍해 나가야 하지 않겠나?
'새로운 인연'에 대해서는 가급적 적당한 '거리(distance)'를 유지하면서 20년의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다.
다행히 이어지면 또 하나의 '오래된 인연'인 것이고 중간에 끊기면 그것도 운명이 아니겠는가.

'퇴행성 질환'의 현실적인 치료 목표는 결코 완치가 아니다.
발견된 당시에서의 멈춤. 더 이상의 악화를 막는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여 2차적 목표를 둔다면, 더 이상의 악화 진행 속도를 가능한 늦추려는 노력이다.

나이에 따라, 세월에 따라 더욱 '좁아지고 날카로워만'지는 이 편협한 '소갈딱지'
하지만 이제까지 같이 해 왔고 앞으로도 같이 해 가야 할 운명이기에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니요, 고치려 한다 하여 고쳐지는 것도 아닌 것 같기에
더 좁아지지 않게, 더 날카로워지지 않게
그렇게 잘~ 관리하며 조심스럽게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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