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쓸데없는 이야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좋아서 하는 것 경주에 내려온 지 이제 3달째가 지나가고 있다. 숙소라고는 병원 안의 빈 병실 하나를 개조(?)하여 진료실을 겸해서 사용한다. 5인실이었다고 하니 작지는 않은, 오히려 짐에 비해서는 제법 넓은 편이다.-그래서 더 춥게 느껴지는가?- 책상과 책장 하나, 침대와 옷장 비슷한 것 하나, 냉장고 TV 컴퓨터 그뿐이다. 학생 시절 자취방도 가능한 단출함-지저분함이 더 기억에 남지만-을 지향하였었는데, 여기도 그러하다. 주말에는 대부분 집에 올라가지만 간혹 숙소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평일이야 당연히 {(24시간 X 4일) + 10시간 정도}는 꼬박 병원에서 지낸다. - 금요일 저녁에는 집으로 올라가기도 하니... - 긴 긴 무료한 시간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노인 병원의 특성상 오전 회진 외에는 그리 바쁜 날이 .. 더보기 '간이역' 문득 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생활 취미생활 등등, 조금 길었던 그리고 약간은 다사다난했던 대학생활이나 인천-서울-울산-대전등 옮겨다닌 직장 생활 그리고 수년간 열성이었던 등산 활동 등에서 만나고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 더구나 진료 및 수술을 하고 입퇴원하였던 환자까지 떠올리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라 감당이 안된다. 우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왔었구나. 2023년 약간 고장난 몸뚱이를 책상에 기댄 채 가만히 생각을 해 본다. 과연 지금 내가 연락하고 교류하고 같이 살아간다고 느끼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문득 비극으로 끝나버렸던 데카브리스트들에게 던진 한 역사가의 평가가 떠오른다. '그들이 인민을 사랑한 만큼 인민들은 그들을 사랑하지 않.. 더보기 '지금' 놀자. 문득 '나라야마 부시코(考)'라는 소설과 영화가 기억이 난다. 50년대의소설 작품을 80년대에 영화로 제작하였으나, 명작의 힘인지 아직도 그런데로 기억이 난다. 물론 영화속에서는 '수간(獸姦)'-물론 장면은 당연히 없다.-이나, 죽은 남편의 소원으로 온 동네 남자와 성관계를 맺는다는 등 불편하고 황당한 내용도 들어있다. 하지만 주된 것은 부모가 70이 되면 새해 첫날 자식이 '나라야마'산 정상의 굴 속에 모셔놓는 다는 것이다. 흔히 일본 중국 한반도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고려장'의 전설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다. 예전 울산에서 한참 산을 다니던 시절 거의 70 가까운 나이에도 엄청나게 산을 잘 다니신 분이 있었다. 며칠전 사람들 만난 자리에서 그 분의 근황을 물어보니, 올해가 72세 인데, 작년부터 영~.. 더보기 돌아가기 싫어!! 나는 나이 들기를 원했었다. 지금이 그리 평안하지는 않기에 나이가 들면 좀 나아지려나? 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누군가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그러면서 동의를 구하듯이 "너도 그렇지 않냐?"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 난 돌아가기 싫어." 다시 돌아 간다? 어디로?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대학 시절? 내가 돌아가기 싫은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 다시 돌아간다 한들 더 열심히 잘 할 자신이 없다. 둘째, 돌아가면 그 개고생을 다시 해야 하지 않나? 어차피 고통을 되풀이 할 뿐이 아니겠나? "그래도 더 나아지지 않겠냐?" "얼마만큼? 그리고 그것을 누가 장담해 주는데?" 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산을 가고, 음악을 듣고, 책을 보고, 식구들과 지내고... .. 더보기 또 한 년(年)을 보낸다. 어느새 또 한 년(年)이 지나간다. 도대체 가는 년(年) 붙잡을 수 없고, 오는 年 막을 수가 없으니. 이 年들 그리고 저 年들 그 수 많았던 年들 무엇 하나 아쉽지 않은 年이야 있겠냐만, 떠나가면 그뿐이니. 돌아서 아쉬워 한들 그 年이 돌아 올리 만무하며, 새로이 덮쳐오는 年에 또 정신이 팔려 그렇게 지나가니 어느덧 50 중반을 넘어선다. 그리고 또 이렇게 한 年을 보내고 새로운 年을 맞이하지만 이 年도 또 그렇게 떠나가겠지. 이제는 새로운 만남에 설레기보다는 헤어짐에 더 익숙해져 버린 나이가 되고 보니 '그래, 아무 年이나 지나가라, 대신, 왔는지 갔는 지도 모르게 그냥 그렇게만 말이다.' 더보기 자본의 위대함. 간혹 종교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을 불문하고, 그 원리는 좋은데 그것을 믿는 사람들 중의 일부가 나쁜 짓을 하기에 욕을 들어 먹는다는 표현을 간혹 듣는다. 특히 기독교가 말이 많고 사건이 많기에 그런 표현을 특히 많이 하지 않는가 싶다. 즉, 원래 예수님의 뜻은 그런 게 아닌데..., 인간들이 그 말을 오역하거나 나쁘게 이용하는 게 잘못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교회에 가서 '진정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뭐 틀린 말은 아니라 여겨진다. 하지만 교회만 그런 거 아니다. 절 성당 모스크 등등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역시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원래의 의도와 지향은 훌륭한데, 그 실천 과정에서 일부의 나쁜 인간들이 그 본질을 훼손.. 더보기 번역의 한계성과 어려움 '사데크 헤다야트'라는 이란 작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낯선 작가이지만 '눈 먼 올빼미'라는 그의 작품은 이란에서는 80여 년간 금서로 지정되어 있다. 이란에서 금서라? 그러면 또 종교나 지도자를 모독하였나?라는 정치적 주제가 먼저 떠 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비슷한 이유로, 즉 많은 젊은이들을 자살로 이끈다는 이유로 금서이다. 확~ 관심이 갈 것이다. 아니 무슨 내용이기에?? 그래서 지금도 그 책은 금서이지만, 동시에 이란에서는 읽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금서'라는 이름이 책 판매에 혁혁한 기여를 하는 것은 이 땅이나 이란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무슨 내용일까? 궁금한 사람은 사서 읽어면 좋다. 하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더보기 지난 글들 최근에는 수 년전 써 놓았던 글들을 다시금 읽어 보곤 한다. '엥? 이런 글도 썼었나?' 싶어 얼른 지워 버린 글들도 몇 개 있다. 논점이 불명확하고 사실 관계가 틀리거나 뒤틀린 글 들도 있어서 지워버리고, 너무 감정에 치받혀 욕설 비슷하게 휘갈겨 놓은 글 들도 있어 지워버렸다. 물론 어떤 글들은 다시 정리하고 수정하여 여기 올려 놓기도 하고... mail 속에 묻어 놓던, 여기 블로그에 올려 놓던 다른 이들에게는 어차피 별 의미도 없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 날 그냥 흔적도 없이 잊혀져 사라질 글 들이지만 나 개인에게는 나름 소중한 기억으로, 의미있는 사고의 파편들로 영원히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남 몰래 구석에서 때로는 부끄러워 하거나 때로는 황당해 하거나 때로는 '오, 괜찮은 데?' 하며 말이다. .. 더보기 이전 1 ···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