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개가 짖는구나 개가 꼬리를 치켜세우는 이유, 또는 꼬리를 내리는 이유. 개가 오줌을 누면서 다리 한쪽을 드는 이유. 개가 낯선 이에게 엉겨붙거나 시끄럽게 짖어대는 이유. 그 밖에 개가 보이는 무수한 반응들을 보면 우리는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자연스런 나의 반응(대응)은? 솔직히 "이런 개새끼가 어디..." 하는 심정으로 차마 발로 차버리지는 못하기에 욕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개무시해 버리거나, 그래도 기분이 좋으면 먹을 것을 좀 던져주거나 하는 정도이다. 나는 따뜻하게 안아주거나 뽀뽀를 하지는 않는다. 이 개새끼가 어디서 뒹굴다가 왔는지, 무슨 쓰레기나 똥에 입을 댔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굥돼지의 심정이 그러하지 않을까? 개사과를 하면서 '국민은 개다'라.. 더보기 맞다. 한동훈은 전혀 책임이 없다. 최근 '현 정부가 잘못한 것에 대해 본인은 책임이 없다'는 말이 조금 논란이 된 모양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논란이 조금 이해하기 힘들다. 뭐가 틀린 말이지? 뭐가 무책임한 말이지? 나는 전적으로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럼 누구에게 책임이 있단 말인가? 굥돼지? 쥴리? 천공? 아니 그들에게 무슨 책임이 있고 잘못이 있단 말인가? 그들은 분명히 개에게 '사과'를 주면서 '국민을 개(처럼)로 생각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대선 전에 분명하게 던지지 않았는가? 그들에게 과감하게 표를 던진 이 땅의 사람들이 분명하게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단일화를 통해 표를 몰아주고도 팽당한 안철수가 손꾸락을 짤라야 하며, 꾀주머니 운운하며 깝쭉되었던 이준석이가 대가리 처박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한동훈, 굥돼지,.. 더보기 戰士가 된 라오콘 1.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소설의 성공에 힘입어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영원한 제국'의 저자 이인화의 첫 데뷔작이다. 아마 '이인화'라고 하면 낯설지 모르지만 '류철균'이라 하면 조금 낯이 익으려나? 하지만 지금 30년 전에 읽었던 소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기관없는 신체(Corps sans Organ)'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 소설 제목이 떠오르곤 하였다. 즉 '나(我)'라는 존재 안에 '강렬도=0'로 무수하게 혼효되어 존재하는 '나(我)들' 지금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여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자극에 의해 욕망의 흐름이 표출될 때 기존의 흐름에서 벗어나 탈주선 (linge de fuite)을 만들어 튀어나와 새로운 지평을 .. 더보기 작은 바램. 고대 그리스의 키오스섬에는 파니오니오스라는 자칭 외과 의사가 활약을 하였다고 한다. 나름의 특별히 공인된 외과 의사 자격증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유능한 이발사였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상당한 부를 누린 것으로 전해진 것을 보면 그 실력은 제법 알아주었던 모양이다. 그는 무슨 수술을 전문으로 하였는가? 다름 아니라 '거세수술'이다. 그는 그 지역 시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노예를 사다가 거세한 뒤 소아시아 지역에 비싼 값으로 다시 팔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그의 손에 의해 거세된 노예가 페르시아 궁정의 환관으로 일하면서 크세르크세스 왕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키오스섬으로 돌아와 그의 남성성을 빼앗은 파니오니오스에게 복수를 하게 된다. 파니오니오스에게 그의 .. 더보기 영화 - '하나비' 개인적으로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좋아한다. '자토이치'나 '소나티네'가 그렇고, 주연만 맡은 '피와 뼈'도 그렇고. 그러기에 불꽃놀이를 의미하는 '하나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수입된 제1호 일본 영화라는 타이틀도 덧붙여야 하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제 2호가 '나라야마부시고(考)'였었구나. 강력계 형사인 주인공은 무기 소지범 검거를 위해 잠복근무를 하여야 했다. 하지만 부인이 암에 걸려 입원한 관계로 동료의 배려로 간호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는데, 그 사이 단짝 파트너는 총을 맞아 하반신 마비가 되어 버린다. 이후 그 범인을 검거하려는 와중에 부하 한 명은 사망하고, 한 명은 총상을 입게 된다. 분노에 치민 그는 범인을 사살하고, 이후 시체에 대고.. 더보기 영화 - '나라야마부시고(考)' 어제 저녁 늦게 김해를 다녀오니 딸이 물어본다. "아빠, 일본의 고려장 같은 걸 다룬 '나라...' 뭔가 하는 영화가 뭐였지?" "음, 나라야마부시고?" "응, 그거 'watcher'에 있더라, 내일 낮에 심심하면 봐" 우연히 이 영화는 나의 수련 전공의 시절의 처음과 끝을 같이 하였다고 할 수도 있다. 인턴 시절 '단편 소설집(集)'에서 우연히 접하였던 작품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었고, 전문의 취득 후 군대 가기 직전 video로 이 영화를 접하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20년이 넘어서 다시, 하지만 좀 더 크고 깨끗한 화질로 감상하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일본의 깊은 산속 외진 마을에서 내려오는 전통. 식량 부족이 주 요인이겠지만, 70이 된 노인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인 '나라 산(山)'에 .. 더보기 독일, 일본 그런데 한국은? 잠시 눈을 1900년대 아프리카로 돌려 본다. 그 거대한 대륙을 책상 위에서 자로 쭉쭉 그어대면서 땅을 나누어 가지던 소위 세계열강들. 그들은 그 검은 대륙의 땅만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그 검은 인간들의 생명, 가족, 문화 그리고 나아가 인종 그 자체를 쓸어버리려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 '검은 역사'는 피로 쓴 역사이며, 총칼로 짓이겨진 비극의 서사시가 될 수밖에 없다. 1904년 독일의 식민 지배에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킨 지금의 나미비아인 헤레로족과 나마족등. 하지만 결국에는 사막에서 포위되어 기아와 탈수로, 감옥에서 질병과 학대 등으로 죽어갔었던 수만 명 - 정확히 그 숫자도 알 수 없지만, 10만 명에 육박하리라 추정 -의 '대지의 저주받은 검은 인간들'. 이 비극은 UN에서 20세기.. 더보기 바둑과 장기 바둑과 장기는 아마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채, 아직도 그 다양한 묘수와 한 판의 전쟁같은 승패로 우리를 자극하곤 하는 가장 오래된 오락 거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바둑은 여전히 이런저런 다양한 형식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가는데 비하여, 장기는 왠지 고리타분한 늙은이들의 소일거리로 전락해 버리는 느낌이 있다. TV 등을 봐도 그런 생각이 과히 틀린 것 같지는 않고... 어떤 차이점이 이렇게 간극을 넓히게 되었을까? 첫째가 바둑은 넓은 평원에서 마음대로 뻗어나가며 싸우고 지키는 전쟁의 양상인데 반하여 장기는 갇히고 제한된 공간 속에서 정해진 길로만 달려야 하는, 꽉 막힌 도시 내에서의 시가전의 느낌이다. 마치 나폴레옹 3세 치하에 오스만 남작에 의해 시작된 파리 도시 계획의 분위기라 할 수도 있다..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 23 다음